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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 Report》 강함 vs 다정함, 인류 생존의 열쇠는?

  • 편집부 기자
  • 입력 2023.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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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함 vs 다정함, 인류 생존의 열쇠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오랫동안 인류는 우리가 사는 세계를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사회로 규정해왔다. ‘강한 자만 살아남는다’는 인식으로 경쟁하며 타인 앞에서 우월함으로 군림하며 전진하고 있다. 경쟁 사회가 만들어지는 인식의 메커니즘이다. 결국 집단이기주의, 혐오, 비인간화 등 사회적 협력(연대)을 해치는 부정적 인식이 대중의 마음속에 깊숙이 자리 잡게 됐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엄태화, 2021)는 이러한 적자생존의 사회를 묘사하면서도 ‘강함(배척)’보다는 ‘다정함(협력·연대)’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담고 있다. 발간된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브라이언 헤어·버네사 우즈, 디플롯)는 ‘인류가 진화하는 동안 다정함이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주장을 펼친다. 이번 호에서는 다정함의 관점에서 영화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정리 편집부
자료 다음영화,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브릭, 롯데엔터테인먼트
메인 포스터 영화 <콘크리트유토피아> 포스터 (출처 : 롯데엔터테인먼트)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속 한 장면. 황궁 아파트 주민들과 외부인이 충돌 직전 대치하고 있다. (출처 : 롯데엔터테인먼트)

원인을 알 수 없는 대지진으로 순식간에 폐허로 변한 서울. 유일하게 쓰러지지 않고 멀쩡히 서 있는 황궁아파트 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부녀회장(김선영 분)을 중심으로 긴급회의를 소집한다. 원래 아파트 주민들과 재난을 피해 들어온 외부인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부족한 자원으로 인한 주민과 외부인 간 갈등으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대체로 외부인들을 아파트 밖으로 내쫓자는 의견이 우세한 가운데 대표자로 902호 남자 영탁(이병헌 분)을 선출된다. 주민들은 강력한 힘과 용기를 가진 그가 필요하고 향후 자신들을 이끌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믿는다. 
영화 속 한 장면. 명화가 방범대원으로서 식량과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아파트 밖으로 나가기 직전 민성을 배웅하고 있다. (출처 : 롯데엔터테인먼트)

강자가 만든 디스토피아일까
한편 착한 품성을 지닌 간호사 명화(박보영 분)는 주민들의 선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남편인 민성(박서준 분)은 가장으로서 외부인들을 몰아내는 일에 동참하지만, 명화는 우연히 찾아온 외부인 모자(母子)를 자신들의 집에 머물 수 있도록 배려한다. 영화의 주인공이기도 한 부부는 본래 착한 사람들로 묘사된다. 타자화하기 보다는 남을 배려하고 도와주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다정다감하고 이웃을 살필 줄 아는,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공감할 줄 아는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영화는 전체주의 사회로 점차 변해가는 아파트 공동체에 초점을 맞춘다. 내부적으로는 일한 만큼만 배급을 받는다는 식의 아파트 수칙을 따라야 하며 이는 우리 모두의 생존을 위해서 불가피한 일이라는 인식을 같이한다. 이를 어기면 전체 주민이 모인 자리에서 “잘못 했습니다”를 200번 외쳐야 한다. 자체 조직한 방범대가 외부로 나가 식량과 생필품을 구하는 일은 전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진 여러 집단이 서로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황궁 아파트는 결국 외부인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스스로 자멸하게 된다.
영화 속 한 장면. 영탁은 방범대를 이끌고 밖으로 나오지만 다른 집단에서 나온 사람들과 마주치며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출처 : 롯데엔터테인먼트)

스스로 만든 규칙에 자멸한 황궁 아파트 
다시 외부인들의 차지가 된 황궁 아파트를 빠져나온 민성과 명화는 폐허 속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는데 이내 곧 민성은 숨을 거둔다. 홀로 남겨진 명화는 어떤 사람들을 따라 그들이 생활하는 피난처에 합류하게 된다. 그곳에 도착한 후 명화에게 건네진 것은 따뜻한 주먹밥 한 개. 일한 만큼 밥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저 거기 있으므로 밥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명화는 주먹밥을 받아든 채 “저 여기서 그냥 살아도 되는거예요?”라고 묻는다. 돌아온 대답은 “그걸 왜 우리한테 물어요. 살아있으면 그냥 사는 거지.”다. 다른 곳에서 왔지만 밥을 내어주고 여기에 살아야 하는 자격을 따지지 않는다. 부족하지만 다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모습이다. 이 공동체는 다 함께 살자며 외부인을 몰아내고 스스로 만든 규칙으로 갈등을 일으키다, 결국 외부인에 의해 공격당해 자멸한 황궁 아파트와 대척점에 서 있다. 
황궁 아파트 주민 수칙 (출처 : 롯데엔터테인먼트)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나눔과 희생을 선택한 공동체가 지속가능성이 더 높다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이 책은 진화론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제시한 과학 서적으로 강한 것만이 살아남는다는 적자생존의 법칙에 반기를 든다. 한마디로 “진화라는 게임에서 승리하는 이상적인 방법은 협력을 꽃피울 수 있게 친화력을 극대화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과학적 가설을 기반으로 저자는 ‘사나운 침팬지보다 다정한 보노보가 더 성공적으로 번식할 수 있던 이유는?’, ‘신체적으로 우월한 네안데르탈인이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가 끝까지 생존한 까닭은?’이라는 물음에서 연구를 시작한다. 이들은 “신체적으로 가장 강한 최적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친화력이 좋은 다정한 종이 결국 살아남았다.”고 주장한다. 한편, 친화력의 이면에 있는 외집단(외부인)을 향한 혐오와 비인간화 경향도 포착한다. 이들이 제시하는 해결책 또한 교류와 협력이 기반이 된 친화력이다. 우리 종은 더 많은 적을 정복했기 때문이 아니라, 더 많은 친구를 만듦으로써 살아남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표지 (출처 : 디플롯)

생존에 유리한 ‘친화력’과 ‘귀여움’
이들이 말하는 생존의 필수 요소는 ‘친화력’으로, 이는 나와 다른 상대방과 협력하고 소통하는 능력이다. 이 능력은 특히 우리 종, 호모 사피엔스에게서 가장 잘 드러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그는 해마다 개체 수가 늘어가는 개에게서도 이 능력을 발견하고, 먼저 자신의 반려견인 오레오와 함께 손짓 실험 놀이를 진행한다. 실험은 간단하다. 한쪽에만 먹이를 숨긴 컵 두 개를 놓고 저자가 손짓으로 먹이가 든 컵을 가리켰을 때, 오레오가 정말로 손짓의 의미를 이해하고 먹이를 찾아내는지 보는 것이다. 놀랍게도 오레오는 빠르게 달려가 먹이를 찾아낸다. 오레오뿐 아니라 다른 개들과도 변형된 실험을 여러 차례 시도한 뒤, 저자는 개들이 손짓의 의미를 이해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같은 실험을 보노보와 침팬지에게 시도했을 때, 친화력이 좋은 보노보는 사람과 눈을 마주치고 시선의 의도를 파악해 먹이를 찾아내지만 친화적이지 않은 침팬지는 계속해 실험에서 실패한다. 

이 실험은 손짓과 몸짓을 이해한다는 것은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가설을 입증하려는 시도다. 결과적으로 유인원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호모 사피엔스는 타인과 마음으로 소통함으로써 감정반응을 조절하고 자기 통제력을 갖추며 생존에 유리하게 진화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점은 인간의 ‘자기 가축화’다. 공격적인 본능을 지니고 사람을 두려워했던 늑대와 달리 친화력을 가진 늑대는 우리와 가까이 지내면서 사람 똥을 먹으며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이후 진화하면서 지금의 늑대와는 다른 가축으로서의 개로 변모했다는 주장이다. 우리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도 비슷하게 자기 가축화했기 때문에 멸종한 네안데르탈인과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었다. 

또 한 가지는 재미있는 점은 진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외모의 변화다. 공동 저자인 브라이언 헤어는 그의 논문 ‘The Survival of the Friendliest: Homo Sapiens Evolve via Selection for prosociality’(Annual Review of Psychology Vol. 68:155-186 )에 보면 호모 사피엔스와 개의 진화에 따른 외모 변화 모습을 그림으로 보여준다. 과학자 집단 브릭(BRIC)의 BIO통신원(fovero)은 ‘[더불어 과학 읽기]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다정한 본성의 위대함이 주는 위로와 희망’에서 “인간 자기가축화 가설을 통해 인간 인지진화가 후기 인간 진화과정에서 공격성보다 집단 내 친사회성이 선호되고 자연 선택되면서 이루어졌다고 제안한다. 인간에게서도 다른 가축에서 관찰되는 가축화의 특징적 징후가 보일 것이라 추측하고 인간의 독특한 정신능력과 관용, 가축화 징후와의 상관관계를 설명하고 흥미로운 증거를 제시한다.”고 썼다. 사람의 모습은 여성스럽고 작게 변하고 늑대는 귀여워진다는 것을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자기 가축화 가설 설명 그림1) 
황궁 아파트 몰락 원인은 공격성과 혐오
저자는 친화력의 이면에는 공격성과 혐오가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 인간은 지구상에서 가장 관용적인 동시에 가장 무자비한 종”이라는 것이다. 그는 인간들이 사회를 구성하는 집단화를 내집단과 외집단으로 나눈다. 내집단을 향한 친화력이 강해지면 외집단에 대한 편견이 공고해진다. 자신의 집단 또는 가족에 위협이 되는 외집단이 등장하면 우리 뇌에서는 친화력을 담당하는 부위의 활동이 둔화된다.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약해지면 공감능력은 사라지고 쉽게 상대방을 비인간화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영화 <콘크리트유토피아>로 돌아가 보자. 황궁 아파트 주민들은 ‘같은 아파트 사람’으로 집단화한다. 내집단 일원에게 상냥한 모습을 보이지만 외집단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며 굉장한 공격성을 보인다. 외부로 나가면 이들이 죽으리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나와 우리 그리고 가족을 위해서라는 경직된 논리로 정당화한다. 문제는 내집단에서도 공격성과 혐오가 드러난다는 점이다. 

영화는 자기 집단화로 인해 그 집단이 어떻게 붕괴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영탁이 그동안 리더로서 황궁 아파트라는 집단을 아무리 잘 이끌어 왔더라도 ‘외부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나자 일순간에 주민들의 태도는 폭력적으로 바뀐다. 배급 과정에서 ‘일한만큼 받는다’는 원칙은 부상으로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을 무시한다. 결국, 영화 말미에 황궁 아파트로 외부인들이 침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은 내부자였다. 부족한 자원은 내부의 갈등을 더욱 부추긴다. 밖으로 나가 식량을 구해오는 방범대의 모습은 점차 지쳐간다. 심지어 부상을 당하거나 죽는다.  

영화는 친화력, 인간에 대한 예의 등이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책은 진화론의 관점에서 결국 다정한 종만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하지만 현실에 더 가까운 것은 황궁 아파트 주민들이 처한 상황이다. 자원의 고갈이 불러오는 비극이라는 점에서 전 지구적 환경 위기와도 접점이 있다. 책에 대한 리뷰를 보면 공격성과 혐오가 난무하는 현실 속에서 인간의 본성은 선하고 착하게 살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에 위안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생존은 선택의 문제일지 모른다. 우리는 내집단으로 향하는 과잉 친화력과 공존하는 공격성과 혐오로부터 벗어나 교류와 협력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과연 우리 현생 인류는 늑대와 호모 사피엔스가 스스로 자기가축화를 선택했던 생존의 길로 걸어갈 수 있을까.


1) 출처 : ‘The Survival of the Friendliest: Homo Sapiens Evolve via Selection for prosociality’, Annual Review of Psychology Vol. 68:155-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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