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으로 바위 치기’의 역습
‘공유지의 비극’으로 본 <D.P.>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한준희, 2023)의 시즌2가 공개됐다. 웹툰 ‘D.P 개의 날’을 원작으로 지난 2021년 8월 공개돼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기를 끈 작품이다. 탈영병 체포조(D.P.)라는 신선한 소재, 매력적인 캐릭터와 배우들의 호연으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고 과거 군대 내 폭력과 부조리를 날카롭게 조명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웹툰이 발표됐던 당시인 2015년 이전에는 탈영, 군대 내 폭력과 가혹 행위, 총기 사고에 대한 뉴스들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었고 군 의문사 진상규명 위원회라는 기구도 설치됐던 기억이 있다. 이와 비교했을 때 현재는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고 한다. <D.P.> 시리즈는 징병제 환경 속에 놓인 대한민국의 특수한 군대의 현주소를 다시 한번 되짚어볼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정리 편집부
자료 넷플릭스, UNIST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D.P.> 시즌2의 한 장면. 구자운(지진희 분) 준장이 강력한 군대를 상징하듯 위압적인 모습으로 서 있다. (출처 : 넷플릭스)일반 사병인 안준호(정해인 분)와 한호열(구교환 분)은 103사단 헌병대 소속으로 탈영병 체포조 임무를 맡는다. 분명 탈영은 잘못된 행동이지만 병사들이 탈영하게 된 다양한 이유를 섬세하게 그려낸 연출이 돋보인다. 하지만 시리즈 내내 군대 내 폭력과 경직된 시스템에 대한 문제의식은 결코 느슨하지 않다. 총 12편으로 구성된 시리즈 중 시즌1에서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돌보기 위해 수학적으로 계산한 후 탈영을 선택한 병사의 이야기를 다룬 ‘몬티홀 문제’가, 시즌2에서 미치도록 하고 싶은 일을 위해 탈영한 병사 이야기를 다룬 ‘커튼콜’이 인상에 오래 남는다. 탈영 배경의 근저에는 경직된 군대 시스템이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는 않는다는 메시지가 묵직하게 느껴진다. 특히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괴롭힘으로 인해 탈영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에는 홀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한 장기 군탈자 장성민의 에피소드인 ‘커튼콜’은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를 되돌아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매우 강렬했다.
<D.P.> 시즌2의 한 장면. 동료들에게 총기를 난사한 김루리(문상훈 분) 일병. (출처 : 넷플릭스) 경직·폭력·은폐 악순환...징병제 국가 군대의 특수성
넷플릭스 시리즈 <D.P.>는 주인공 안준호가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사회구성원으로 그리고 혼자 힘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가며 어른으로 한 단계 성장하는 이야기다. 준호에게 군대는 폐쇄적이며 진실을 은폐하는 일이 일상인 사회다. 괴롭힘으로 인해 탈영, 자살, 총기 사고 등을 일으키는 병사들이 존재하지만, 근본적인 대책을 취하지 않고 사고가 발생하면 병사 개인의 일탈로 몰아가고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 구성원들에게는 진실에 대해 침묵할 것을 강요한다.
시즌1의 메인 플롯이 조석봉 상병 사건이었다면 시즌2는 김루리(문상훈 분) 일병 사건이다. 여러 편에 걸쳐 진행되며 전체적인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된다. 총기를 난사하고 탈영한 김루리 일병이 가해자인가 피해자인가라는 질문은 매우 중요하다. 괴롭힘을 당한 김 일병은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 한 가지가 더 나온다. 그렇다면 이들이 속한 군대는 책임이 없는가. 이는 시리즈를 관통하는 메인 질문이다.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군대는 책임을 회피하고 오로지 김 일병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주장이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군대는 이를 은폐하기 위해 진실을 조작한다.
이번 호에서는 이러한 질문들을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용어를 통해 풀어보고자 한다. 한 생물학자가 처음 사용한 용어인데 경제학에서도 이를 자주 애용하고 있다. 사회학뿐만 아니라 수학적으로 접근 가능한 것이어서 매우 흥미로운 이론이다. ‘공유지의 비극’은 모두가 공유하는 자원, 재화 등은 개인의 욕망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황폐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원의 고갈이 심화하고 있는 현대에 탄생한 경제학 이론이지만 여러 학문 분야에서 자원의 황폐화를 막기 위한 해법을 제시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사회·정치 분야에서는 개인과 국가의 역할에 대한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 윤리적인 접근도 가능하다. 국가는 사회의 안정을 위해서 과연 개인의 희생을 강요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도 유효하다.
<D.P.> 시즌2의 한 장면. 탈영한 안준호(정해인 분)가 지차 안까지 쫓아온 체포조들과 맞서기 위해 준비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는 권투를 배우 무술 시력이 뛰어나다. (출처 : 넷플릭스)내 사전에 무책임은 없다!
준호는 아버지에 의한 가정폭력 피해자다. 어머니는 아이들(준호와 여동생)을 위해 도망가지 않고 참았다. 이렇게 시작된 가해자와 피해자의 동거는 준호를 방황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끝내 미안한 어머니는 아들을 그냥 그저 바라볼 뿐이다. 이러한 준호의 가정사는
드라마에서 다루는 군대의 모습과 매우 닮아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어머니에 대해 준호는 늘 의문을 가졌다. “왜 도망가지 않아요?”어렸을 때 자신을 아무도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찍이 깨닫고 스스로 지키기 위해 권투를 배웠다. 이런 점에서 준호는 매우 합리적이다. 또한, 질문할 줄 알고, 무엇이 옳고그른지 판단할 수 있으며, 기본적인 예의도 갖춘 캐릭터다.
군에 입대하기 전 준호는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다. 배달 갔던 집에 한 주부는 거스름돈 500원이 없다며 준호를 의심하고 예의 없이 대한다. 사실은 그 집 아들이 돈을 가져간 것이었는데도 그럴 리 없다고 단정해버린다. 배달을 마치고 돌아온 가게에서는 사장이 방금 전 일에 화를 내며 폭언을 내뱉는다. 그런 사장에게 준호는 밀린 월급을 달라고 요구하지만 몰염치하고 예의 없는 사장은 그를 해고한다. 어이없는 부조리한 상황을 겪은 준호는 배달 오토바이를 훔쳐 팔아버리고 곧 군대에 입대한다.
군대에서 괴롭힘을 당하지만 잘 견딜 수 있는 인내심도 있다. 우연히 탈영병 담당관 박범구(김성균 분) 중사의 눈에 띄어 탈영병 D.P. 임무를 맡게 된다. 처음으로 나간 임무에서 준호는 탈영 사병의 죽음을 막지 못한다. D.P.의 임무는 ‘무사히 데리고 들어오는 것!’이다.
준호는 임무를 무시하는 선임 박성우(고경표 분)와 함께 술을 마시는 중 자살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는다. 이를 참지 못하고 박성우를 흠씬 두들겼다. 책임지지 않는 것, 돌봐야 할 사람을 돌보지 못하는 것을 협오 수준으로 싫어한다. 탈영병 자살의 충격을 잊지 못하고 준호는 자신에게 책임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다. 이후 준호는 남들이 보기에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임무에 매달린다.
각각의 에피소드에서 준호는 체포 대상에 늘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과 스스로 안전하게 돌아가는 방법으로서의 복귀를 제안하며 명령이 아닌 설득을 하려고 한다. 탈영하게 된 배경을 이해하고 그가 다치지 않게 복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때로는 다잡은 탈영범을 놓아주기도 한다. 데리고 들어가도 그가 다시 나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핵심 질문, ‘어쩔 수 없잖아 ’‘그럼 책임은 누가?’
준호는 이렇듯 따듯한 마음을 가진 인간미 넘치는 캐릭터다. 그는 군대를 향해 왜 책임지지 않느냐고 질문할 자격을 갖췄다. 첫 번째 임무였던 자살한 탈영병 신우석 사건과 자신을 잘 챙겨줬던 선임 조석봉 상병 사건은 준호가 중요한 선택을 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그가 가장 견딜 수 없었던 말은 ‘방관자’였다. 신우석의 납골당에서 우연히 만난 그의 누나로부터 “그렇게 착한 애가 괴롭힘을 당할 때 왜 보고만 있었어요?”라는 말을 듣는다. 사실 신우석과 준호는 같은 부대에 있었던 적이 없다. 준호가 스스로 만들어 낸 말이었다. 그가 만들어 낸 말 속에서 덫에 걸린 듯한 기습 질문에 준호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석봉 사건 이후 준호는 그의 환영으로부터 ‘방관자’‘달라진 게 없다’‘책임지지 않는다’라는말을 듣는다. 그러던 중 김루리 일병 사건이 터지고 신우석의 누나 신혜연(이설 분)이 군 장정 인권센터 간사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신혜연은 TV 인터뷰에서 ‘국가도 잘못을 합니다. 잘못을 했으며 인정을 해야된다’고 말한다. 김루리 일병 사건은 국가의 시스템 내에서 일어난 일로 국가도 분명한 책임이 있는 공범이라고 강조하다. 이 장면을 본 준호는 곧 탈영을 결심한다. 군대가 진실을 숨기고 있으며 이를 위해 사실을 은폐하고 조작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못다한 책임, 아무도 지지 않는 책임을 자신이라도 지겠다는 결심인 것이다.
“박범구 :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있다. 그런 비겁한 말도 안 하마. 근데 나는 우리는 니들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어. 이건 니가 감당해야 할 일들이 아니야. 임마. 그럴 필요도 없고.
안준호 : 그럼 누가 합니까.
박범구 : 뭐?
안준호 : 어쩔 수 없는 거면. 아무도 어쩔 수 없는 거면. 그럼 누가 감당해야 겁니까.
한호열 : 야 안준호 왜 그걸 니가 감당하는데?”

해법은 결국 연대..방관자에서 해결 주체로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공유지의 비극은 공유 자원이나 재화가 개인의 욕심으로 인해 고갈 또는 황폐화할 수밖에 없다는 이론(가설)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학문 분야에서 연구를 통해 다양한 해법을 제시하는 중이다. 여러 해법 중 하나는 국가가 중앙집권적으로 통제하는 방법도 있다. 그렇지만 다른 제안과 마찬가지로 약점은 있다. 각종 규칙과 제도를 마련하는 데 있어, 현장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많이 소비된다는 것이다.
다른 한 가지 방법은 각 구성원에게 사적 재산권을 허용하고 자율적으로 행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욕심부리지 않고 적정한 만큼만 가져가면 자원을 오랫동안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천재지변과 같은 변수가 발생할 경우, 통제 불능한 상태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이는 일반적으로 인간을 본능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수밖에 없기때문에 불가능하다고 여겨진다.
세 번째 방법은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공동체를 형성해 자원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 방법의 근저에는 인간의 선한 의지에 대한 믿음이 깔려있다. 이 방법을 제시하고 해당 이론을 통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엘리너 오스트롬 교수는 “인간은 상대방이 협조하려는 의지가 확인되면 언제든지 이에 협조로 응답하고,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며, 다른 누군가의 행동이 타인에게 해를 입히는 경우 자기 일처럼 나서서 이를 제어해내고자 하는 의향을 가진 존재”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개인들이 대부분이다. 의지를 가진 사람에 더해 적절한 제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적절한 제도하에서는 자신의 이익과 공동의 이익을 조화시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그림 1]
<D.P.>의 문제점은 공유지의 비극의 문제점과 닮아있어 해결 방법도 비슷하다. 비밀이 많고 은폐 행위가 지속되는 사회는 존속할 수 없다. 구자운(지진희 분) 육군본부 법무실장 준장은 군대 시스템을 대표하는 캐릭터다. 겉으로는 부드러운 듯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국가(또는 군대)의 이익을 위해 온갖 전략 전술을 사용하는 권모술수에 능통한 것이 특징이다. 그가 책임을 회피하는 방법은 매우 야비하다. 개인의 일탈을 모든 사건의 원인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애초에 탈영병은 사회에서도 문제가 있었고 군대에서는 적응하지 못하는 관심사병이었다라는 프레임을 짜는 식이다.
단편적인 위법 행위, 즉 ‘탈영했다’, ‘동료들을 살해했다’만이 유일한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권력의 본성은 너무도 강력해서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어쩌면 준호의 저항보다 훨씬 더 현실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또 신혜연은 말한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 계란이 깨지지만 적어도 흔적은 남을 것이라고.
개인(준호)=가변저항, 저항이 많을수록 지속 가능해져
공유지의 비극이나 <D.P.>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을 전기회로 실험으로 증명한 연구사례는 매우 흥미롭다. 지난 2017년 3월 김필원 울산과학기술원(UNIST) 자연과학부 교수의 수학적 접근을 통해 공유지의 비극 문제를 해결 방법을 제시한 연구 논문이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게재됐다.
그 논문은 개인과 사회의 에너지를 표현하는 전기회로로 사고실험을 진행한 결과다. 개인의 다양성이 보장되고 서로 간의 연결이 획일적이지 않으며, 경쟁이 존재하는 사회가 영속성이 높았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김 교수는 ‘최대전력 게임(Maximum Power Game)’이라는 수학적 모델로 사회의 흥망을 살피는 연구를 진행했다. 최대전력 게임은 사회적 자원과 에너지의 배분 문제를 전기회로라는 최소한의 물리적 모형에서 구현한 뒤 ‘게임이론(Theory of games)’을 적용해 해석한 모델이다. 게임이론은 경쟁상대의 반응을 고려해 자신의 최적 행위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의사결정 행태를 연구하는 경제학 및 수학이론이다.
최대전력 게임에서 개인은 하나의 전기저항으로 표현된다. 이들은 최대의 결과물을 내려고 더 많은 전력을 소모하기 위해 노력한다. 사회에서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경쟁하는 개인과 같다. 이런 저항들은 다양한 구조에서 서로 연결된 전기회로가 될 수 있는데, 이를 하나의 사회로 생각할 수 있다. 사회를 저항과 전압으로 이뤄진 회로로 단순화한 것이다.
하나의 저항은 자신을 통과하는 전압과 전류에 반응해 값을 조절한다. 이 값은 전기회로 안에서 다른 저항들과 얽혀 있다. 개인의 선택(저항 변화)이 다른 사람과 사회(전기회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분석하는 모델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저항 변화’는 탈영해 진실이 담긴 USB를 공개하겠다는 준호의 선택이다. 선한 의지가 반영된 준호의 저항은 회로의 저항이라는 의미와 어떤 권력에 저항한다는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다.
준호의 저항은 수많은 전기의 저항 중 단지 한 개의 선택 저항일 뿐이다. 그러나 이는 신혜연이 얘기한 바위에 계란의 흔적을 남기는 것과 같다. 사회가 지속 가능하려면 소위 ‘준호=저항’이라는 선택 저항이 더 많이 늘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제도적 ‘중재’나 자발적 ‘희생’ 있어야 지속가능해
김 교수는 우선 이기적인 개인들이 마음껏 경쟁하는 사회를 전기회로로 구현했다. 저항을 직렬이나 병렬, 혹은 그들의 조합으로 만든 것이다. 이렇게 연결하면 각 저항은 계속 올라가면서 많은 전력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한다. 저항이 계속 올라가면 결국 부도체가 돼 전기가 흐르지 않게 된다. 회로가 망가지는 것이다. 사회로 치면 개인들의 무한한 경쟁이 사회의 작동을 멈추게 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런 파국을 피하기 위한 방법은 간단하다. 단순한 구조에서 벗어나 일정한 비정형성을 허용하는 것이다. 실제로 전기저항을 마름모꼴로 배치하자 회로가 멈추지 않고 작동했다. 이때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마름모꼴의 가운데에 놓인 저항은 전력을 얻지 못하고 ‘희생’하는 것이다.
전기회로 속 저항값을 다르게 한 경우의 결과도 흥미롭다. 이 차이는 개인들의 효율성 차이로 볼 수 있다. 김 교수는 회로 속 각 저항에 서로 다른 ‘고정저항’을 붙여봤다. 고정저항은 개인이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하지만 손실되는 에너지를 뜻한다. 부지런한 사람은 고정저항이 작고, 게으른 사람은 고정저항이 크다.
각 저항에 서로 다른 고정저항을 넣은 뒤 게임이론에 적용하자 직렬, 병렬로 연결돼도 회로가 망가지지 않았다. 김 교수는 “이는 뒤처지는 사람도 쓸모가 있음을 보여주는 모형”이라며 “고정저항 값의 차이는 개인이 가진 능력과 개성의 차이로 볼 수 있는데, 이런 차이가 경쟁을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만약 게임에서 아주 높은 효율을 가진 상대와 경쟁해야 한다면 그와 마찬가지로 고효율이 되는 것은 서로에게 도움이 안 된다”며 “부지런한 경쟁자와 겨루는 상대가 게으른 사람일 경우 둘과 사회 전체에게 이익이 돌아간다”고 덧붙였다.
이는 조직에서 업무효율이 떨어지더라도(고정저항이 큰 저항을 의미) 내치면 안 되는 이유와도 연결된다. 모두가 1등을 차지하는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2등, 3등의 위치에 있어야 사회가 존속하는 것이다. 1등만 바라보고 지나치게 경쟁하는 사회가 오히려 효율이 떨어지는 역설적인 상황이 전기회로 실험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수많은 전압과 저항을 연결한 뒤 경쟁 없이 중앙에서 최적의 분배를 조율하는 전기회로는 어떨까. 이런 사회는 강력한 중앙정부가 개인에게 자원을 할당하는 공산주의 체제에 빗댈 수 있다. 경쟁 없는 전기회로의 전체 에너지는 7.25로 계산됐다. 반면 적절한 구조에서 각 저항이 서로 경쟁한 회로 전체의 에너지는 5.95였다. 여기까지는 중앙집권식이 더 효율적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앙집권식의 경우 작은 변화만 있어도 전체 에너지가 순식간에 무너졌다. 반면 경쟁 있는 회로에서는 값이 변하거나 충격이 가해져도 적절한 에너지를 유지했다.

바위에 계란 흔적 남기기
문제는 이 같은 회로 모델들이 실제에서도 그대로 작동하는가다. <D.P.>속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박범구 중사, 임지섭 대위, 서은 변호사 등과 같은 경직된 사고에서 벗어나 있는 저항도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다만, 게임이론에서처럼 이들은 희생돼서는 안 된다. 각자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말이 더 현실적으로 들리는 사회다. 따라서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 흔적일지라도 남는다는 신혜연의 대사가 뼈아프게 다가온다.
같은 맥락에서 ‘커튼콜’은 가장 매혹적이면서도 비극적인 에피소드다. 장성민은 여성성을 연기하는 남자 배우로서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군대 문화는 그런 그와 어울리지 않았고, 구성원들은 그런 그에게 이해가 아닌 폭력을 가했다. 견디기 힘든 폭력에 탈영을 했지만, 되돌릴 수 없을 만큼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한호열이 한 차례 그를 도우려고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탈영했더라도 국가는 탈영병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 <D.P.>의 메시지다. 그리고 다름은 차별이 아니다. 누구나 존중받아야 한다. 그 어떤 누구의 존재 가치를 부정해선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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