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월든,‘ 똥’에서 대안을 찾다
과학기술과 인문, 예술 통해 이상적 사회상 모색
울산과학기술원(UNIST)에서는 도시환경공학부를 중심으로 독특한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과일집’이라는 이름이 붙 은 공간에서는 작년 12월 28일에 시각예술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과학기술원에서 열리는 전시회가 이색적이기는 하지 만, 그 주제는 낯설다 못해 엉뚱하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전시회의 주제는“인피니티 fSM”이다‘. fSM’은 영문‘Feces Standard Money’의 두음자를 조합한 것이다. 배설물 즉, 똥을 근간으로 하는 돈이라는 뜻이다. 이른바‘똥본위화폐’인 것 이다. 이 전시된 작품의 면면을 따라가며 UNIST가 똥본위화폐와 과일집을 중심으로 벌이고 있는 사업을 들여다보았다.
글 강창대 기자 | 자료제공 울산과학기술원(UNIST)
이날 과일집에는 젤라틴과 세제(퐁퐁), 색소를 섞어 만 든 형형색색의 물질을 티백에 담아 진열장에 늘어놓은 독특한 작품이 전시됐다. 허희진 학생이 만든 이 작품 의 제목은 ‘퐁차 쇼룸(PONG-CHA SHOWROOM)’이다. 티백을 물에 담그면 그 내용물이 울어나오 듯이 생활 에서 사용되고 버려지는 것들이 물을 오염시킨다는 메 시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끊임없이 순환하는 환경을 표현한 작품도 전시됐다. 최미진 연구교수가 환경 데이터를 갖고 제작한 ‘Hypo-connected society’가 그것이다. 쉼 없는 순환 속 에서 인간이 저지른 오염은 다시 인간에게 돌아갈 수밖 에 없지만, 노력에 따라 이 순환은 새로운 가치를 만들 어낼 수 있다는 메시지가 이 작품에 담겼다.
전시장에는 합성섬유로 제작된 천을 겹겹이 쌓아 지구 의 미래를 상상한 작품도 있었다. 윤빛나 연구원이 만 든 ‘25세기 그랜드폴리’라는 제목이 붙은 이 작품은 인위적 과정이 쌓이면 미래에는 오히려 이 인위가 자연스 러움을 대체한다는 내용을 시각화했다.
이현경 기초과정부 교수는 육각형을 모티브로 ‘마법의 성 ’ 이라는 작품 제작에 참여했다. 이 작품은 사이언스 월든 프로젝트를 상징하는 육각형에 지속적인 변화와 융합의 의미를 담았다.
이날 열린 ‘인피니티 fSM’ 전(展)은 톡톡 튀는 작품 활 동으로 잘 알려진 구지은 작가가 전체 책임을 맡아 진 행했다고 한다. 이 행사에는 전문 작가를 비롯해 사이 언스월든 프로젝트의 연구원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그 해 9월부터 아이디어 구상, 재료 선정, 작품 제작 등 3개월 이상 작품 전시회를 준비했다.
똥본위화폐와 순환적 가치
이 전시의 주제인 fSM 즉, 똥본위화폐란 무엇이며, 언 뜻 과학기술원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시각예술 작품 전시회가 열리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똥본위화 폐는 UNIST 도시환경공학부의 조재원 교수가 이끄는 사이언스월든 프로젝트의 중심 주제이기도 하다. 여기 에는 많은 비용과 에너지를 들여 버리기에만 급급한 ‘ 똥 ’ 을 바이오가스로 변환해 에너지로 사용함으로써 발 생하는 가치를 변(便)을 생산한 이들이 서로 공유하는 ‘ 순환’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순환의 과정에 비(非)수 세식 변기인 ‘비비변기’(BeeVi) 는 분뇨처리 과정에 필요한 에너지를 줄이고 물 사용을 최소화함으로써 환경오 염을 막는 역할을 한다. 똥본위화폐는 이러한 가치의 실현을 위한 일종의 가치체계인 것이다. 현실에서 똥본 위화폐는 ‘꿀’이라는 단위로 표현되고 공동체 안에서는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
전시가 열린 과일집(Science Cabin)은 똥본위화폐 실험 을 위해 마련된 생활형 연구실이다. 이곳에서는 평소 바이오가스 생산과 활용에 관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 다. 그리고 과학-예술 융합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공간 이다. 이는 ‘인피니티 fSM 전’이 이곳에서 열린 이유이 기도 하다. 과일집에는 종종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젝 트 등 다양한 사업을 통해 각종 예술가들의 전시와 공 연 등이 펼쳐지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활동은 ‘사이언스 월든’(Science Walden) 프로젝트의 철학을 구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사 이언스 월든은 19세기 미국의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 로(Henry David Thoreau, 1817. 7. 12 ~ 1862. 5. 6.)의 『월든』(Walden)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똥본위화폐는 사이언스 월든의 가치를 담은 철학이다.이상향 모색과 실험
『월든』의 저자 소로는 미국 매사추세츠 콩코드에서 태 어나 그곳에서 생을 마쳤으며, 생전에 철학자, 시인, 수 필가로 활동했다. 이 책은 소로가 고향의 월든 호숫가 숲에서 2년 2개월 동안 살며 경험과 생각을 정리한 수 필집이다. 그는 물욕과 인습에 찌든 사회로부터 벗어나 그곳에서 인생의 참된 의미를 사색했고 주체적이고 자 유로우면서도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검소한 삶의 모습 을 보여주려 했다. 소로의 저서는 마하트마 간디나 흑 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에게 영향을 주기도 했다. 소로의 사상은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는 이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그 가운데에는 미국의 행동주의 심리학 자인 버러스 프레더릭 스키너(Burrhus Frederic Skinner, 1904.3. 20 ~ 1990.8.18.)가 있다. 그는 ‘행동공 학’ 또는 ‘강화’ 등과 같은 심리적 기작을 적용한 양육과 교육을 통해 이상적인 사회를 구현할 수 있다고 믿었 고, 자신의 신념을 소설『 월든 투』(Walden Two)에서 어 느 한 자족적인 공동체로 그렸다. 이 공동체의 이름 역 시 ‘월든’이다. 이곳은 행동주의 심리학자에 의해 체계 적으로 통제됨으로써 구성원이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삶을 살도록 한다. 말하자면, 과학이 공동체의 근간을 이루는 원칙인 셈이다.
이렇게 ‘월든’은 이상향에 대한 모색과 실험이라는 의미 로 발전해 왔다. 사이언스 월든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 다. 이 프로젝트는 최종적으로 “똥본위화폐로 세상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고 다양한 실험을 이 어간다. 똥본위화폐에서의 ‘똥 ’ 은 환경공학, ‘똥본위’는 철학을, ‘화폐’는 순환경제를 의미하며, ‘행복’은 예술과 인문학적 노력으로 풀이된다. 그래서 사이언스 월든은 똥본위 화폐를 근간으로 하는 세계 최초의 ‘순환·환경 경제 프로젝트’이자, 과학예술가 공동체이며 과학과 예 술의 융합을 위한 노력의 집합체로 볼 수 있다.
도시공동체 과학예술융합시스템
사이언스 월든 프로젝트는 크게 2단계에 걸친 목표를 갖고 진행돼 왔다. 첫 번째 단계는 2015년부터 2016년까 지의 기간으로, 이때 사이언스 월든의 정신과 철학이라 할 수 있는 똥본위화폐의 개념이 정립됐다. 1단계의 목 표는 사이언스 월든 커뮤니티를 건설하기 위한 디자인 설계도를 완성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디자인과 설계의 과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과학예술 시스 템이라는 융합적 개념과 관련된 제품, 활동계획, 사상, 교육 등이 총 망라됐다. 이 과정에서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소통부재와 개인화, 경제적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화폐개념을 고민하게 되었고, 그러는 가운 데사이언스 월든의 정신과 철학이 정립되어 갔다. 이때 과학자뿐만 아니라, 예술가와 인문학자 등이 어우러져 위에 제시된 사회적 문제의 해결 방을 모색했다. 이렇 게 해서 모아진 생각 가운데 하나가 과학예술융합 실험랩이자 사월당(思越堂) 또는 파빌리온이라고 불리는 시설이다. 그리고 또 하나가 똥본위화폐다.
사월당의 면적은 약 122㎡의 복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육각형의 독특한 외형은 외부참여기관인 한국자연미 술협회 ‘야투’와 환경공학자들이 아이디어를 모았다. 그 리고 최종적인 설계와 시공은 야투에서 담당했다. 사 월당 내외부에는 크게 환경기술장치, 과학예술 융합장 치 등이 자리하고 있다. 환경기술장치로는 비비화장실, 바이오에너지 시설, 옥상녹화, 빗물정화장치, 하수 재 이용 멤브레인 등이 있다. 과학예술 융합장치로는 황금 보리, 엘지트리, 미래형 변기, 인포블 라인드 등이 있다. 모든 설비는 사이언스 월든에서의 과학기술과 과학예 술융합작품 등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라고 한다.
녹조류 나무 조형물을 살펴보는 조재원 UNIST 교수(도시환경공학부). 조 재원 교수는 사이언스 월든을 이끄는 중심인물이다.
전원길 작가의 몽유똥원도(ⓒ 김경채)물, 에너지, 그리고 화장실
그간 사이언스 월든은 다양한 실적을 만들어왔다. 우 선 똥본위화폐의 가치 체계에서 중심에 있는 비수세식 비비화장실 변기 개발이 그중 하나다. 이를 위해 사이 언스 월든 화장실 연구팀은 지리산 남원 작은 마을의 화장실을 연구하는 것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이곳은 모든 가구가 자연의 순화에 따르는 ‘생태 화장실’을 사 용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비비화장실 변기는 생태 화 장실에서 똥이 퇴비가 되는 과정을 관찰한 경험을 바탕 으로 고안된 셈이다. 그리고 사이언스 월든은 비비화장 실 이외에도 미래형 변기 프로토타입을 개발하기도 했 다. 이는 화장실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시험하기 위해 추진한 프로젝트다. UNIST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하 고 체험자들의 인터뷰를 반영해 이상적인 변기 프로토 타입 모델을 제작했다.
사이언스 월든은 비비화장실 변기로 새로운 사업을 구 상하기에 이르렀다. 비비화장실을 사용함으로써 똥본 위화폐의 유통에 참여할 수도 있으면서, 사용자의 건강 검진까지 할 수 있는 변기를 만들어 본격적인 사업으로 시도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사이언스 월든은 이 를 ‘매화틀프로젝트’라고 명명했다.
또, 사이언스 월든은 똥본위화폐로 공동체의 복지와 청년을 위한 기본소득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이루기 위 해 실험실에서 얻은 똥을 근거로 하루에 한 사람이 누 는 똥의 가치를 화폐가치로 환산하기도 했다. 그 가치 는 약 500원이다. 여기에 공동체 단위의 노력을 보태기 위해 구상한 것이 이른바 ‘신농사직설 프로젝트’라는 도시텃밭농업이다. 이를 위해 사이언스 월든 똥으로 바 이오에너지로 만들고 난 이후의 찌꺼기를 퇴비로 만들 어 활용하는 연구를 수행했다. 그러는 가운데 여러 경 로로 수집한 분뇨로 만든 퇴비를 비교하며 작물의 성 장도를 연구하기도 했다.
과학이 일상이 되는 집
사이언스 월든 프로젝트의 중심에는 사월당 외에 또 하나의 공간이 있다. ‘과학이 일상이 되는 집’ 줄여서 ‘과일집’이라 부르는 곳이다. 과일집은 사이언스 월든 프로젝트의 다양한 실험이 이뤄지는 생활형 실험실이 다. 3명이 동시에 거주할 수 있는 생활시설을 갖췄으며, 인분을 에너지로 전환해 활용할 수 있는 바이오시스템 을 구축하기 위한 다양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평소 엔 연구원들이 상주하며 각종 실험을 진행하지만, 종종 예술과 과학이 함께하는 다양한 행사가 열리기도 하고, 철학 등 인문학 강연이 이곳에서 펼쳐지기도 한 다. 작년 11월에는 ‘과학-예술 레지던시 프로젝트’의 결 과를 선보이는 오픈 스튜디오 행사가 열렸었다. 이때 예 술가들은 과일집에 입주해 11월 한 달간 머무르며 사이 언스 월든의 가치와 비전을 주제로 한 작품 활동을 진 행했다. 똥을 소재로 한 전원길 작가의 ‘몽유똥원도’도 이때 전시됐다. 또, 최근에는 2 ㎾급 고체산화물 연료 전지(SOFC)가 과일집에 설치되기도 했다. SOFC는 수 소나 탄화수소를 공기 중 산소와 반응시켜 전기를 만드 는 일종의 발전기다. 고체산화물을 전해질로 이용하는 게 특징인데, 다른 연료전지에 비해 발전효율이 높다. 또 수소뿐 아니라 천연가스 같은 탄화수소도 연료로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사이언스 월든의 최종목표는 자원순환형 경제, 환경문 제 동력을 똥본위화폐 기반으로 마련함으로써 다양한 사회적 문제의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아직 진 행 중인 사이언스 월든의 두 번째 단계는 2017년부터 2021년까지의 진행된다. 이 단계의 목표는 똥본위화폐 의 새로운 가치를 동력으로 하는 자원순환형 경제를 도시와 마을공동체에 도입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 써 우리 사회의 복지를 강화하고 청년층에 새로운 기회 를 조성한다는 목적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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