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 확대를 통해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폐로에 따른 현실적 대책 수립이 더 시급하다. EU는 모든 회원국이 2015년까지 국가 방사성 폐기물 관리 계획을 수립하도록 하는 새로운 지침을 마련하기도 했다. 국내 각 원전 부지에 임시 저장하는 원전 폐기물은 조만간 포화 상태에 이르게 되고 지금의 원전 정책대로라면 내년 완공 예정인 경주 방폐물 처분장마저 머지않아 포화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정부는 고준위 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 처분 관련 정책 마련을 올해 본격 착수한다.   정리 박지혜 기자 

 

 

폐로의 핵심은 ▲원자로 등 1차측 제염 기술 ▲방사능 다량 방출 부분 원격 절단술 ▲원전 해체 후 폐기물 처리 ▲원전 부지의 환경 복원 등이다. 전 세계적으로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 일본 정도의 국가들만 폐로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이들 국가가 폐로한 원전은 129기에 이르며 현재도 원전 폐로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원자력발전소에서 발생하는 방사성 폐기물(이하 방폐물)은 크게 중·저준위 방폐물과 사용후핵연료로 구분한다. 방폐물은 현재 각 원전 부지 내에 임시 저장 중이며 중·저준위 방폐물 처분장을 경주에 건설 중으로 2014년 6월 준공 예정이다. 

임시 저장 중인 중·저준위 방폐물은 2011년 9월 말 기준 8만 8620드럼(드럼당 200리터)이며, 발전소에서 나오는 상업용 사용후핵연료는 경수로 약 5408톤, 중수로 약 6431톤이 4개 원전 부지(경수로 3개소, 중수로 1개소)에 저장돼 있다. 

문제는 사용후핵연료 저장소가 곧 포화 상태에 이른다는 점이다. 사용후핵연료 저장량은 총 36만 8092다발로, 총 임시 저장 용량(51만 8307다발)의 약 71% 수준에 이른다. 중장기적으로 제5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10∼2024년)에 따른 원전 확대(23 → 34기)를 고려 시, 사용후핵연료 발생량은 상당 부분 증가할 전망이다. 발생량은 2011년 대비 2040년에 1.8배(경수로 3.57배, 중수로 1.76배)인 65만 다발 규모, 연평균 2.1%(경수로 4.5%, 중수로 2%) 증가 추세를 전망한다. 
 

한수원에 따르면, 고리 원전이 2016년 최초 포화 상태에 이르는 것을 시작으로 월성 원전이 2018년, 영광 원전 2019년, 울진 원전이 2021년에 포화 상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사용후핵연료는 2024년까지 매년 1만 6890∼2만 2194다발 규모 발생이 예상되며, 2021년 누적 발생량이 53만 4029다발에 달해 임시 저장 가능 총량을 초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아 2011년까지 호기 간 운반 비용에 81억 4000만 원이 지출됐으며 2016년까지 400다발, 16억 원 이상의 비용이 지출될 것으로 보인다. 

1978년 4월 상업 운전을 시작한 국내 원전의 효시인 고리 1호기가 2007년 6월 설계 수명(30년) 만료로 가동이 중단됐다가 정부의 승인을 받아 2008년 1월 10년간의 일정으로 재가동에 들어간 것도 경제성과 국내 폐로廢爐 기술이 아직 걸음마 단계라는 데 이유가 있다. 

고리 1호기는 약 2800억 원을 들여 보수하면 계속 운전할 수 있지만 폐로 하는 데는 최대 15년간 3500억 원(2003년 산정 기준)이 들고 100만㎾ 원전을 새로 지으려면 2조 5000억 원이 필요하다. 환경단체들은 폐로 비용이 1조 원이라는 추산을 내놓는 등 원전 건설비보다 폐로비가 더 많이 든다는 주장도 있다. 한편 지난해 비용산정위원회에서는 원전 해체 비용을 심층 재검토해 5000억 원 이상으로 재산정할 예정으로, 오는 10월까지 국내 원전을 대상으로 현장 물량 실사 및 비용 평가를 수행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원전 폐로 비용과 기간이 만만치 않지만 설계 수명이 다한 고리 1호기와 2018년 수명이 끝나는 월성 1호기를 언젠가는 폐로를 해야 하며 우리 정부는 당연히 이를 준비해야 한다. 지금부터 준비해도 일정은 빠듯하다. 한국원자력학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폐연료봉 다발을 지금보다 더 촘촘히 배치하거나 원전에 보관 중인 폐연료봉을 신설 원전으로 분산 배치해 최대한 저장 기간을 늘려도 2024년부터는 저장 시설이 꽉 차게 된다. 그런데 중간 저장 시설 확보를 위한 사전 조사, 부지 적합성 평가, 후보지 공모, 최적지 선정, 공청회, 주민 투표를 거쳐 부지를 확정하는 데만 4년이 필요하고, 그 후 공사 기간 6년까지 합하면 착수 후 완공까지 최소 10년이 걸린다.  2024년 완공을 맞추기는 빠듯한 일정이다.   

경주에 건설 중인 중·저준위 방폐물 처분장만 봐도 1986년 최초 검토 이래 약 20년 만인 2005년에 건설지를 가까스로 결정하는 등 핵폐기장 건설은 부지 선정부터 상당한 시일이 필요하다. 주민 동의 여부가 불투명해 그야말로 최악의 조건에서 사업은 시작된다. 경주 방페장은 또 준공 시기를 애초 계획했던 2012년 12월에서 18개월 더 늦춘 2014년 6월로 조정해 사업비도 당초 1조 5000억 원에서 300억~1000억 원이 추가됐다. 

프랑스는 1980년대 후반부터 사용후핵연료 처분장 부지 확보에 나섰으나 아직도 확정하지 못했다. 스웨덴은 1976년 시작해 33년 만인 2009년에야 영구 처분장 부지를 선정했다.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방폐장 건설에 대한 들끓는 주민 여론 등으로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힘든 상황에 처해 있으며 2001년 중간 저장 시설의 부지 조사 착수부터 운영 시점까지 11년 소요, 80억 달러의 건설 비용이 소요됐다.
 

방폐장 건설에 이렇게 많은 시간과 예산,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발생하는데 그에 비해 우리 정부의 태도는 안이하다는 지적도 많았다. 정부는 그간 뚜렷한 대책 없이 사용후핵연료 저장소의 조밀화를 방안으로 내놨다. 똑같은 수조에 이전보다 촘촘히 핵연료를 채워 넣음으로써 물리적 포화 시점을 늦추겠다는 복안이다. 또한 최근 준공된 신월성 2호기(2013.1 준공)를 비롯해 신고리 3·4호기(2013.9, 2014.9)가 준공되면서 임시 저장소가 늘어나면 2024년까지 추가 저장 공간 확보가 가능하므로 애초 예상 포화 시점이 2016년에서 2024년으로 8년 정도 늦춰지기에 이를 활용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23기의 원전을 운영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제5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2024년까지 총 34기의 원전을,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 따라 2030년경에는 원자력 발전 비중을 현재 약 36%에서 59%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이처럼 원전의 확대는 그만큼 방폐물 발생량도 많아짐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경주 방폐장이 완공돼도 그것만으로는 미래의 방폐물 용량을 감당하기 힘들며 새로운 방폐장을 추가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경주 방폐장 건설 추진 경위를 비쳐볼 때 추가 방폐장 건설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목소리가 강하다. 새로운 전략을 짜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방폐물 분류를 고준위와 중ㆍ저준위 두 가지로 분류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지적이 일고 있다. 원전 선진국인 프랑스와 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IAEA(국제원자력기구) 권고대로 새로운 분류 기준에 따라 방폐물을 세분화해 처분함으로써 방폐장 부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처분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  

우리가 하는 방식대로라면 원전 해체 과정에서 다량 발생하는 방사능 오염 정도가 아주 미미한 극저준위 방폐물도 중ㆍ저준위 방폐물로 분류된다. 이들은 건설비와 운영비가 상대적으로 비싼 동굴 처분 시설이나 공학적 천층 처분 시설에 처분할 수밖에 없기에 처분 비용이 그만큼 증가한다. 현재의 방폐물 처분 기준을 적용할 경우 장기적으로 경주 방폐장의 처분 용량을 너끈히 초과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방폐공단 측은 경주 방폐장의 활용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선 고준위와 중ㆍ저준위로 단순 분류하고 있는 현재의 방폐물 분류 체계를 IAEA의 권고대로 고준위, 중준위, 저준위, 극저준위, 극단수명으로 세분화하고, 그 특성에 따라 처분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분류된 방폐물 특성에 맞게 단순 천층 처분, 공학적 천층 처분, 동굴 처분의 세 가지 방식 중 하나를 적용함으로써 처분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처분 대상 방폐물 양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종합 처리 설비를 도입해 경주 방폐장의 처분 효율성과 경제성을 높일 수 있다. 

사용후핵연료 처리 관련해서는 우리 정부는 올해 본격적으로 공론화를 벌일 계획을 세웠다. 사회적 수용성을 최대한 확보해 가면서 관리 대책을 수립하기 위해 올 상반기에 민간 자문 기구인 공론화위원회를 구성·운영을 시작한다는 방침이다. 토론회, 설명회, 공청회 등 다양한 논의 프로그램을 통해 대국민 공론화를 추진한다. 공론화는 중간 저장 시설 등 중·단기 현실적 대안을 모색하는 데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2014년까지 공론화위원회의 활동 결과를 지경부와 원자력진흥위원회에 제출하며 지경부는 공론화위원회 권고 사항을 최대한 반영해 ‘방사성 폐기물 관리 기본 계획’를 수립하고 이에 따라 부지 선정 및 건설에 착수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정부는 국내 모든 핵폐기물 임시 저장소가 포화 만료 상태에 이르는 2024년에 얼추 맞추겠다는 복안이다. 

이와 관련 방폐공단은 사용후핵연료 운반 및 저장 분야 중간 저장 시설 건설을 위한 인허가 신청 시까지 운반 용기와 저장 용기의 설계 승인 등 국내 모델 개발을 완료할 계획을 세우며 준비 중에 있다. 최종 처분 시설 건설을 위한 부지 확보를 추진하되, 부지 확정 전까지 기술 인프라 구축과 지하 연구 시설(URL) 확보, URL을 활용한 처분 공학 기술 실증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