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등록 RSS 2.0
장바구니 주문내역 로그인 회원가입 아이디/비밀번호 찾기
home
기사 분류 > 전기기술
[재미있는 전기 이야기] 중국 고전으로 본 전기
2011년 4월 11일 (월) 14:55:57 |   지면 발행 ( 2011년 2월호 - 전체 보기 )



전기 탐구에 들어가기 앞서, 고대 중국인의 사상 밑바닥에 흐르는 음양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 한나라 고조의 손자인 회남국의 국왕 류안은 많은 학자와 문인을 모아《회남자淮南子》를 편집했다(BC 120년경). 이 중 <천문훈天文訓>에 적힌 천지창조를 보면, 하늘과 땅의 형태가 없던 태초부터 우주가 생겨났다. 우주 속에 맑게 빛나는 것은 하늘이, 탁한 것은 땅이 되어 천지로 나뉘었다. 하늘과 땅의 정기로부터 음양의 두 기운이 생기고, 세상의 모든 현상은 이 두 기氣의 이합離合으로 생겼다.

정리 전화영 기자

과학의 발상지는 서양인데, 중국 고전 중에 찾아볼 만한 과학적 기록이 있느냐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서양의 중세를 이끈 사상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스콜라 철학이다. 당시는 자연계의 불가사의한 현상에 대한 탐구를 꺼렸기에 자연과학의 불모지였다. 14세기 무렵 르네상스가 번성하며 인간과 자연의 재발견으로 실험과 관찰을 바탕으로 한 자연현상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근대 전기자기학의 출발인 W. 길버트William Gilbert의 자기론은 1600년 발표됐다.
한편, 중국에서는 송나라(약 1000년 전) 때 세계 3대 발명품인 종이와 인쇄 · 화약 · 나침반을 비롯해 조중지의 수학과 천문서(남조 400년대), 다양한 과학적 기록이 담긴 심괄의《몽계필담夢溪筆談》(송 1086년), 송응성이 지은 산업기술서《천공개물天工開物》(명 1637년) 등 수많은 이공학 저서가 있다. 적어도 명나라 때까지 중국 과학은 서구에 뒤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전기 탐구 면에서 고전 시대는 동양과 서양을 불문하고 정전기靜電氣시대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전기의 존재를 가벼운 것을 끌어당기는 마찰 정전기와 대기 공전空電의 첨단 방전 및 벼락〔雷〕으로 인지했다. 고전 시대에 중국인들이 이것에 대해 관찰하고 이리저리 궁리한 흔적은 흥미로운 얘깃거리다.

마찰 정전기 - 끌어당기는 것은 서로 통한다
그리스 자연과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철학자 탈레스Thales(BC 600년경)는 호박琥珀과 자석의 끌어당기는 힘에 대해, 그 안에 영혼이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중국에서는 호박을 쉽게 얻을 수 없지만, 마찰전기가 일어나는 천을 3000여 년 전 은나라 때 활발하게 짰으며, 대모玳瑁(바다거북의 등딱지)나 보석을 장식품으로 사용했다. 이것을 통해 고대인들은 일상생활에서 정전기 현상을 희미하게나마 인식했다.
최초의 기사記事로 보이는 전한의《춘추위春秋緯》<고이우考異郵>(BC 100년경)나 후한 왕충의《논형論衡》2011년 2월호 79
(90년경)에는 "진짜끼리는 끌어당기지만 마음이 맞
지 않는 것에는 감동하는 일이 없다"고 적혀 있다.
동진의 곽박이 지은《산해경도찬山海經圖贊》안에는 "자석흡철磁石吸鐵, 대모취개玳瑁取芥, 기유잠통氣有潛通……"이라는 글귀가 나온다. 여기서 기氣란 자석과 대모 등 끌어당기는 것끼리 서로 통함을 뜻한다. 이 해석은 로마의 시인 루크레티우스Titus Lucretius Carus(약 BC 99∼BC 55)의 사고방식과 닮았다.
즉, 그는 자석끼리 서로 끌어당기는 것은 두 사물의 표면에 일종의 흐름〔流〕이 있으며,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뻗어나가 갈고리와 고리가 서로 걸리는 것과 같다고 인식했다. 그는 이러한 현상을 자석에 적용해 서술했지만 정전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결국 동서를 막론하고 정전기와 자석의 인력은 조금은 비현실적인 '기'라든지 '류流'같은 것에 의존해 해석했다.

영강 원년(300년) 혜제는 양 씨를 황후로 맞았다. 왕비가 궁중에 들어오고, 잠자리에 들기 위해 시종이 의복을 벗기자 의복에서 갑자기 불이 일어났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를 수상히 여겼다. 얇은 견직물, 담비나 여우 등의 모피류는 겨울 추운 달밤에 자주 발광發光한다. 이에 대해 명나라 장거정은 몸의 '난暖'과 외부의 '한寒'이 충돌해 일어나는 것으로 설명했다(장문충공張文忠公전집).

당나라의 문인 단성식은《유양잡조酉陽雜俎》(863년)에서 "깜깜한 밤에 검은 고양이의 털을 털이 난 반대 방향으로 쓰다듬으면 화성과 같은 불꽃이 인다"고 기록했다. 또한 "벼룩이나 이가 튀어 오른다"고 했다. 고양이의 털가죽은 마찰 정전기의 대표 물질로, 몸통의 털에 대한 정전 용량 C는 작기에 발생한 전하 Q는 적어도, 발생하는 전압이 Q/C이므로 불꽃 전압이 발생할 정도의 높은 전압이 되기 쉽다. 또한 벼룩이나 이가 튀어 오르는 까닭은, 그것이 털과의 접촉으로 같은 부호의 전하를 얻어 반발하기 때문이다. 서진 장화의《박물지博物志》(290년경)에는 "머리를 빗거나 옷을 갈아입을 때 미광微光과 미음微音을 동반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또한《진서晋書》권19에 따르면 영강 원년(300년) 혜제는 양 씨를 황후로 맞았다. 왕비가 궁중에 들어오고, 잠자리에 들기 위해 시종이 의복을 벗기자 의복에서 갑자기 불이 일어났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를 수상히 여겼다. 얇은 견직물, 담비나 여우 등의 모피류는 겨울 추운 달밤에 자주 발광發光한다. 이에 대해 명나라 장거정은 몸의 '난暖'과 외부의 '한寒'이 충돌해 일어나는 것으로 설명했다(장문충공張文忠公전집). 이러한 현상들은 지금 식으로 말하면 중국의 대륙적 기후는 겨울에 특히 건조해 마찰전기가 일어나기 쉬운 환경에 있기에 일어난 것이다.
중국은 고대부터 직공織工이 번성했으며, 견직물 표면에 윤기를 내고 매끈하게 하기 위해 홍합이나 석판으로 광을 냈다. 이때 발열과 정전기로 말미암아 불이 일어나지 않도록 물을 뿌렸다.《 삼국지 · 오사三國志 · 吳史》<십이우번전十二虞飜傳>에 관련 기술이 있다. 번의 형에게 손님이 찾아왔다. 객인은 젊은 그에게 인사를 안 하고 돌아갔다. 그는 객인에게 편지를 보내 '나는 호박은 썩은 진애塵埃를 빼지 않는다고 들었다. 따라서 이쪽에 들리지 않은 것은 그리 이상할 것은 없다'라고 했다. 객인은 겨우 12살 난 번의 비범함에 놀랐다. 그 이후 그의 평판은 높아졌다. 요점은 이 시대에 이미 습기가 정전기를 억지抑止한다는 것을 알았다는 사실이다.
호박은 마찰 정전기의 대표격으로, 중국 사정을 덧붙여 설명하고자 한다. 중국의 약학서《본초강목本草綱目》(명 1578년, 이시진 엮음)에 의하면 범虎은 죽으면 영혼이 땅 속에 들어가 돌로 바뀐다. 호박琥珀이란 이름은, 그 형상이 이것과 닮았기에 붙은 것이다.
"소나무 가지와 마디에 활기를 띨 때 무더운 날 송진이 녹아내려 소나무 몸 밖으로 배어 나온다. 이것이 팽대해 땅 속에 떨어져 천 년의 긴 세월 동안 수분이 빠지면 반짝이는 본체만 남는다. 이것이 호박이다. 실제로 이것을 불에 태우면 소나무의 기운이 감돈다. 천으로 닦으면 초개草芥를 얻을 수 있다. 약제로써 진통, 혈류, 이뇨 개선 등의 효과가 있다"고 기술했다. 호박은 송진과 단풍나무 액이 광석처럼 변한 비결정질로, 호박탄 C40H64O4를 갖는 것이 특징이며, 자연의 풍토로 말미암아 생성된 것이다. 서양에서 발트해를 따라 많이 나온다. 중국에서 서역의 계빈, 운남성의 애뢰, 미얀마 북부 등에서 나온다. 고대에는 귀중품으로, 팔찌 한 개 가격이 170만이나 했다( 《남사南史》<제기帝紀> 권5, 27, 500년경). 단위가 불명확하기에 이 가격을 오늘날로 환산할 수는 없지만 간단히 얻기 어려운 것이었음에는 틀림없다.

첨단 방전 - 길흉, 점괘를 보다
화창한 날 지상에는 100V/m 정도의 전기장〔電界〕이 있다. 대류운〔雷雲〕이 드리우면 구름 안은 대부분 상층부에 양의 정전기〔正電荷〕가, 하층부에 음의 정전기〔負電荷〕가, 가장 아래쪽에 양의 정전기가 나타난다. 이 때문에 지상의 전기장은 높아진다. 1㎸/㎝ 이상에 이르면 지상 돌출부에 공기의 절연 파괴가 일어나 코로나 방전을 일으킨다. 이를 서구에서 세인트 엘모의 불(Saint Elmo's fire)이라고 한다. 폭풍이 휘몰아치는 밤에 배의 돛대, 교회의 첨탑, 가파르고 험준한 산봉우리 등에 나타나 청자색의 화염을 보인다.
지중해의 뱃사람들은 이탈리아의 항구도시 고에타Goeta에서 순사한 세인트 에라스무스(바뀌어 엘모)를 기리고 수호신으로 모셨다. 배의 돛대에 나타나는 화염을 세인트 엘모의 불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한편, 중국의 경우 왕조사 안에 군사, 농사, 기상 등과 관련해 많은 기록이 남아 있다. 《한서漢書》<서역전西域傳> 권66下에 따르면, 원시년 동안(1∼5년) 차사 후왕국에서부터 옥문관으로 통하는 새 길을 냈을 때, 이와 관련해 한의 지방관 교위 서보와 왕인 고구 사이에 작은 분쟁이 일어났다. 고구는 전 왕조가 살해당한 사례가 있어 자신도 살해당할지 모른다고 두려워했다. 왕의 집 창끝에 불이 생기는 것을 본 왕은 이를 병사의 기운으로 여겨 즉시 말을 몰아 고창벽高昌壁을 돌파하고 한과 적대 관계인 흉노 땅으로 도주했다. 왕은 불을 길吉하다 여긴 것일까.
《진서晋書》권27에 따르면, 혜제 흥원 3년(304년) 성도왕이 반란을 일으켜 장사를 공격했다. 성 주위에 병사를 배치했더니 긴 창끝에 불꽃이 나타나 매달아 놓은 등롱燈籠 같았다. 이것은 왕이 인명을 가벼이 여기고 싸움을 좋아하는 데 대한 하늘의 벌이다.
금속 창끝은 불이 되어 그 성질을 잃었으며, 만약 낮이었다면 병사도 불이 되어 타 죽고 성도왕은 자멸한다는 징조였다. 왕은 이를 깨닫지 못해 마침내 패전으로 끝났다. 수나라 양제는 폭군으로 알려져 있다. 무모한 싸움으로 세월을 보내고, 황하와 장강을 잇는 대운하 건설을 행했다. 전쟁과 공사에 끌려나온 농민들은 도탄에 빠져 괴로워했다. 617년 고구려에 원정군을 보냈다. 그때도 '병기야유화광兵器夜有火光'이라고 있었으며, 대패했다. 이로써 권위는 완전히 실추되고 수는 겨우 2대 38년으로 멸망했다.
《수서隨書》권3 <제기帝紀> 양제의 최후 부분에 '불즙장자분관수실지존망不將自焚觀隋室之存亡'이라고 있다. 위에서 이야기한 성도왕과 유사한 문장으로 '불즙不蕺'이란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는 의미다. 두 이야기 모두 무모한 싸움으로 인명을 얕본 응보로 자멸했으며, 이 경우는 '흉凶'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금사金史》<태조제太祖帝>에 따르면 금나라는 1115년 요나라에서 독립했다. 요제는 70만 대군을 거느리고 금나라에 접근했다. 금제는 스스로 적군을 맞아 대치했다. 그러나 요나라 내에서 내란이 발생해 이틀 전에 요제가 자신의 나라로 돌아간 것을 금제는 알았다. 이때 창끝에 빛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여러 장수에게 이르기를 "요제는 이미 돌아갔다. 이를 추격해야 한다"라고 말하고 요나라의 군대를 추격해 패주敗走시켰다. 여기서 생긴 빛은 장병을 고무해 승리로 이끌었기에 '길吉'이다. 군사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기상과 농경 이야기로 옮겨보자.

은나라 갑골문자 중에는 '뇌雷'와 '전電'이 있다. 구름, 빗방울, 차륜車輪, 선상線狀섬광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름과 비는 벼락이 출현하는 조건이며, ' 雷'의 '田'은 차륜을 의미한다. 차륜은 우르르 내려치는 천둥이고 '電'은 벼락이 꼬리, 즉 섬광을 내는 것을 나타낸다.

《원사元史》권50 <가색불성稼穡不成(농경불작農耕不作)>에 순제 시대 기상이 불순해 대기근이 있었던 것으로 나와 있다. 지정至正21년(1361년)에 석주에 큰 바람이 불어 나무는 뽑히고 여섯 가축(소, 말, 양, 돼지, 개, 닭)은 울고 기다리던 긴 창끝에는 불꽃이 일었다. 병을 닦으면 사라지고 흔들면 다시 불꽃이 나왔다. 이것을 지금 식으로 해석하면 병 표면의 습기를 닦아 없애면 누설 저항이 증대해 코로나방전이 사라지고, 흔들면 다시 표면에 습기가 생겨 재차 불꽃이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불꽃을 고대인들은 요사스러운 기운으로 느끼고 길흉의 징조로 파악했다.

벼락 - 경외의 존재로 의인화
앞에서 살펴본 마찰 정전기와 첨단 방전에 비해 벼락은 일상생활과 밀접하다. 논리적 해석 외에 벼락을 의인화한 이야기도 많다. 고대인들에게 벼락은 경외의 존재였다. 그리스에서 최고의 신 제우스는 천둥과 번개, 폭풍우를 자유롭게 조정해 신들을 지배했다. 중국에서 조물주는 험악한 사람들을 혼내고 벌하기 위해 사자使者로 벼락을 떨어뜨리고 집을 파괴하고 때에 따라서 사람의 목숨도 빼앗았다. 이러한 전설에서 벗어나 과학적 해석을 시도한 고전도 있다.
은나라 갑골문자 중에는 '뇌雷'와 '전電'이 있다. 구름, 빗방울, 차륜車輪, 선상線狀섬광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름과 비는 벼락이 출현하는 조건이며, '雷'의 '田'은 차륜을 의미한다. 차륜은 우르르 내려치는 천둥이고 '電'은 벼락이 꼬리, 즉 섬광을 내는 것을 나타낸다. 또한 심괄의《몽계필담》을 보면, 그가 가지고 다녔던 고대 구리로 만든 술통 표면에는 σ와 ◎의 모양이 새겨져 있는데 σ는 구름을, ◎는 벼락을 의미한다. 고대문자인 는 천둥을 나타낸다.

이를 통해 3000년 이전의 중국 고대인들은 구름, 번개, 천둥의 관계에 강한 관심을 보였음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은 '電'과 '雷'를 구분했으며, '電'은 번개, ' 雷'는 천둥의 의미로 사용했다. 앞에서 거론한 전한의《회남자》<지형훈地形訓>에는 '음양부陰陽溥위뢰爲雷, 음양격양위전陰陽激揚爲電'이라고 있다. 즉, 음양 두 기운의 충돌에서 격렬함의 차이로 '雷'와 '電'을 구별했다. 후한의 왕충은《논형》<뇌허편雷虛編> 중에서 진짜 벼락은 '뇌자태양격기야雷者太陽激氣也'라고 했다. 이 설명은 정월이면 양기가 움직여 벼락이 시작한다. 5월이면 양기가 왕성해져 벼락도 격렬해진다. 가을부터 겨울에 걸쳐 양기가 쇠하면 벼락은 잠복한다. 한여름에 양기가 기세를 떨치고 음기가 이 틈을 타 음양 두 기운이 뒤섞여 뇌해雷害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고대에서는 '雷'와 '電'을 서로 다른 것으로 서술했지만, 당과 명나라에 이르러 이 두 개는 동일 현상으로, 다만 나타나는 법이 다를 뿐이라고 인식했다. 또한《남제지南齊志》권11(479년)에 '전광유경電光有頃, 뇌명雷鳴'이라고 하여 빛과 소리의 속도 차이를 인식하고 있다.

이야기를 바꿔 고대부터 의인화한 벼락을 여러 가지 형태로 그렸다. 그 대표적인 것이 둥글게 배치한 연고連鼓안에 벼락이 있어 왼손으로 연고를 쥐고 오른손으로 두드리는 것이다. 그 기원은《논형》에 있다. 왕충이 속설 속 벼락의 모습을 부정하고 엉터리라고 비판하면서 한나라 당시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졌던 벼락을 그림으로 그려놓은 것이다. 일본에도 전해져 화한삼재도회和漢三才圖會(에도 시대 1712년, 데라지마 료안寺島良安) 안에 그려져 있다.
낙뢰에 대한 구체적인 예는 다음과 같다.
• 남조제 건원 4년(500년경) 5월 뇌운으로 수도는 칠흑 같은 어둠이 됐다. 낙유 안창전에 낙뢰가 있어 모조리 불탔다.
• 영명永明8년 4월(490년), 보림사에 낙뢰가 있었으며, 벼락으로 인한 불이 탑 아랫부분을 태웠으나 창이나 문은 무사했다(⑴과 ⑵의 예는《남제지》권12).

• 원조 지정 28년(1368년) 6월 북경의 대성 수만사에 낙뢰가 있었으며, 창으로부터 불이 떨어지고 건물 동쪽 지붕위 장식인 큰 바다거북의 입에서 불이 이는 한편, 부처의 몸에서도 불이 나왔으나 건물은 무사했다( 《원사지元史志》권 제3하).
• 북송 시대 무사 이순거의 집에 낙뢰가 있었으며, 불은 창문에서 나와 태양까지 올라갔다. 사람들은 모실母室도 탄다고 생각해 피난했다. 돌아와 보니 벽과 창문의 종이는 새까맣게 탔지만 건물은 무사했다. 한편, 집 안에 나무로 만든 장 속에 들어 있던 은을 박은 칠기漆器의 은은 모두 녹아 떨어졌으나 그릇은 무사했다. 보도寶刀는 칼집 안에서 녹았다. 불은 초목을 먼저 태우고 그 후 금석을 녹이는데, 이 현상을 신기하게 여겼다( 《몽계필담》권12).
이상의 네 가지 사례로 당시에는 아직 도체와 절연체의 분리 개념이 없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청나라 때 방이지는 벼락은 석불을 녹여 분쇄하고 도전성의 금속 물질을 녹이지만 비전도성의 칠기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이와 같은 분류는 근대 도체와 절연체의 분류 개념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물리소식物理小識》, 권2, <풍뇌우양류風雷雨暘類 · 화이火異> 청 1664년)

피뢰 - 프랭클린보다 앞선 중국
유럽과 미국에서 피뢰침 연구를 시작한 것은 B.프랭클린Benjamin Franklin(미국)과 T.F. 달리바르 Thomas Francis Dalibard(프랑스)에 의한 1752년경의 일로, 중국 고전 시대에 피뢰 개념이 있었는지는 흥미로운 부분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낙뢰에 대한 4건의 구체적인 예 중에서 3건은 건물이 타서 없어지는 것을 면했다. 이것은 끊어졌다 이어졌다 했더라도 금속 통로가 있었으며 뇌전류는 그것을 따라 흘렀을 가능성이 있다.
여기서 상당히 흥미를 끄는 것은 포르투갈 선교사 G. 마갈헤스Gabriel de Magalhaes(중국명 안문사)가 1668년 전후에 기록한《중국십이의 대기적》이란 책으로, 중국 건축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아래는 1953년 C. 로우아(프랑스)가 이 책을 다시 인용한 것이다.
"중국 고대 궁전과 대사원 등 대형 건축물은 지붕이 하늘을 향해 휘었으며, 그 뒤나 능선 위에 장식용 용이나 바다거북 등의 동물을 놓았다. 동물은 입을 벌리고 혀는 하늘을 향해 있다. 또한 동물의 복부 안을 금속선이 통과해 그 한쪽 끝이 땅 속에 묻혀 있다. 따라서 낙뢰 시 뇌전은 용의 혀에서 금속선을 통해 대지로 나가 흩어져 사라진다."
그는 1640년에 중국으로 와 37년간 선교사로 머물며 청나라 황제에게 총애를 받아 많은 궁궐 · 신사 · 불당을 견학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적은 것이기에 거짓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피뢰침에 대해 프랭클린이 제창한 1752년 이전에 이미 중국에는 그 기원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산시성 잉현의 불궁사는 송나라 1056년에 건립된 목조탑으로 전체 높이 약 67m, 지붕 상부에는 약 14m 길이의 철제 탑찰塔刹이 있다. 따라서 탑 본체에서 나무로 이루어진 부분의 길이는 53m다. 탑의 받침대는 7m 아래로 파 내려가 돌을 쌓은 구조다. 이 부근에 연간 벼락이 친 일수는 40일 정도로 비교적 높은 편임에도 탑은 뇌격을 받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최근에 조사했더니 탑 본체와 받침대는 건조상태로 마치 장련 애자와 같은 절연체로 추정됐다. 다시 말해 목조탑은 벼락에 대해 절연 피뢰의 구조였다는 조사 보고가 나왔다.
송나라 이후 원, 명, 청으로 이어지며 전기에 대한 여러 현상에 관해 상세한 관찰과 해석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스스로 현상을 인공적으로 재현하고 실험과 실증을 통해 현상을 해명하려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한편, 유럽과 미국에서는 진공 실험으로 유명한 마그데부르크 시장 O. 게리케Otto von Guericke의 구리 구球에 의한 정전기 실험(1672년), 이어 영국 F. 혹스비Francis Hauksbee의 정전기 전기의 개발과 방전 실험 등이 있었다(1705년). 게다가 기전기는 강력한 대형이 되어 전하의 축적을 가능하게 하는 라이덴병Leyden jar의 발명(1746년)도 있었으며, 정전기에 관한 연구는 한층 활발해졌다. 1800년 전후에는 A. 볼타Alessandro Volta의 전퇴電堆발명이 있었으며, 정전기는 동전기로 발전했고 근대전기공학의 길을 열었다.
개념적 발상은 실증적인 연구 수단을 동반함으로써 확실해지면 유용한 이론과 실용으로 이어진다. 이쯤에서 최근 몇년의 동양과 서양의 차이를 느낀다.

<Energy News>

인쇄하기   트윗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태그 : 재미있는 전기 이야기
이전 페이지
분류: 전기기술
2011년 2월호
[전기기술 분류 내의 이전기사]
(2011-04-11)  [보호계전기②] 고도의 지원 기능을 구비한 보호계전기 정정 지원 시스템 도입
(2011-04-11)  [보호계전기①] 보호계전기 시스템의 미래상에 대해
(2011-03-02)  [신재생에너지 현황과 전망] 대용량 풍력발전용 발전기의 특성 비교
(2011-03-02)  [신재생에너지 현황과 전망] 대용량 풍력발전의 동향 - 일본편
(2011-03-02)  [국내] 청정 무한 차세대 에너지원 핵융합에너지
[관련기사]
[재미있는 전기 이야기] 광 해저 케이블 개발의 역사Ⅱ (2011-05-18)
[재미있는 전기 이야기] 광 해저 케이블 개발의 역사Ⅰ_ 역사를 통해 배우는 기술의 진보 (2011-04-25)
핫뉴스 (5,259)
신제품 (1,474)
전기기술 (799)
특집/기획 (766)
전시회탐방/에너지현장 (268)
업체탐방 (254)
자격증 시험대비 (215)
전기인 (120)
분류내 최근 많이 본 기사
[단기연재] 진공차단기 시험...
[신재생에너지 - 수력 ①] 대...
[Opinion]역률개선용 저압 전...
비상 발전기 및 소방 전원 보...
고압피뢰기 구조와 역할
전기기기 설계 -직류와 변압...
인버터에 의한 모터제어
[해외] 무정전 옥내 변압기 ...
엘리베이터 제어 방식의 변천...
[독자투고] NEC 규정접지 및...
과월호 보기:
서울마포구 성산로 124, 6층(성산동,덕성빌딩)
TEL : 02-323-3162~5  |  FAX : 02-322-8386
정기간행물등록번호 : 마포 라00108  |  통신판매업신고번호 : 마포 통신 제 1800호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강창대 팀장 (02-322-1201)

COPYRIGHT 2013 JEONWOO PUBLISHING Corp. All Rights Reserved.
Family Site
네이버 포스
회사소개  |  매체소개  |  정기구독센터  |  사업제휴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용약관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 거부  |  네이버 포스트  |  ⓒ 전우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