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코 두코바니 원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의 빛과 그림자 잭팟인지 무리한 적자 수주인지, 뚜껑 열어봐야 안다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이 체코 두코바니와 테믈린 지역에 1000메가와트(MW)급 신규 대형 원전 2기를 짓는 사업에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7월 17일 20시 50분경(현지시간 13시 50분), 체코 정부는 신규원전 건설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한수원을 선정한다고 발표했다. 한수원(주계약)은 한전기술(설계), 두산에너빌리티(주기기, 시공), 대우건설(시공), 한국원자력연료(핵연료), 한전KPS(시운전, 정비) 등 국내 업체들과 ‘팀코리아(Team Korea)’를 구성하여 원전건설 역무 전체를 일괄 공급하게 될 예정이다.
정리 편집부
자료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외
 체코 두코바니 원전 전경 (제공: 한국수력원자력)
이번 입찰은 2022년 3월, 체코전력공사의 두코바니 5호기 건설사업 국제 공개경쟁 입찰 공고로 시작되었다. 같은 해 11월, 한수원과 함께 EDF(프랑스), 웨스팅하우스(미국)가 입찰서를 제출하며 본격적인 경쟁에 돌입했다. 2024년 1월, 체코전력공사는 에너지 안보와 국익 극대화를 위해 입찰 규모를 당초 1기에서 최대 4기로 확대했고, 기한 내(’24.4)까지 수정입찰서를 제출한 한수원과 EDF의 2파전으로 경쟁 구도가 좁혀졌다. 당시까지는 유럽원자력동맹1)을 주도하고 있는 프랑스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유럽 원전사업 경험이 많은 EDF가 양자 대결에서 유리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체코 신규원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관련 뉴스 게재 (출처: 산업통상자원부)
공기 준수, 높은 기술력 대비 저렴한 가격 유효 그러나 세계 유수의 글로벌 사업자들만의 각축전이 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팀코리아’가 선정되며 2년 4개월에 걸친 수주전이 일단락되었다. AFP통신에 따르면,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는 한수원이 입찰에서 EDF를 제친 것과 관련해 “한국의 입찰이 모든 평가 기준에서 더 우수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막판까지 한국과 경쟁을 벌인 EDF는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Barakah nuclear power plant) 수주전에 이어 이번에도 고배를 마셨다.
한국이 프랑스를 제치고 이번 사업을 따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팀코리아의 ‘온타임 위딘 버짓(on time & within budget)’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이다. 팀코리아는 정해진 예산으로 공사 기간을 정확히 준수하는 것으로 이미 명성이 자자하다. ‘공기(工期) 지연’은 곧 추가비용 발생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 같은 대형사업 수주전에서 당락을 결정짓는 요인이 되곤 한다. 체코 정부에서는 한국이 UAE 바라카 원전 4기 건설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부분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높은 기술력 대비 저렴한 가격도 우선협상자로 선정되는데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전해진다. 한수원이 이번 수주전에 내세운 APR1000 모델의 가장 큰 경쟁력은 건설 단가다. 1기당 건설 단가가 9조원 안팎인 이 모델은 15조~16조 원으로 예상되는 EDF의 EPR1200에 비해 가격경쟁력에서 크게 앞선다는 평이다. 세계원자력협회(WNA) 조사 결과를 봐도 2021년 기준 한국의 원전건설 단가는 킬로와트(kw)당 3571달러로, 미국(5833달러), 프랑스(7931달러) 등 경쟁국보다 확연히 낮다.
이번 수주를 위한 정부의 지원도 빼놓을 수 없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4월 제니퍼 그랜홈 미국 에너지부 장관을 만나, 한-미 원전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양국 정부의 건설적인 역할을 강조했다. 안 장관은 같은 달에 체코를 방문해 요제프 시켈라 산업통상부 장관, 즈비넥 스타뉴라 재무부 장관 등 체코 정보 주요 인사들을 면담하기도 했다. 윤석렬 대통령은 7월 10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해 워싱턴컨벤션센터에서 페트르 파벨 체코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 같은 정부 부처의 노력뿐 아니라, 한수원과 원전 협력업체, 원자력 학계와 연구기관, 정부 부처 및 지원 기관들도 이번 수주를 위해 지난 2년간 한마음으로 전력을 다했다.
 전기산업 분야 협·단체는 체코 원전 수주를 환영하며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출처: 한국전기산업진흥회)
20조원의 UAE 원전 넘어선 24조원짜리 잭팟? 체코는 원전 6기를 가동하고 있는 두코바니와 테믈린에 각각 2기씩 최대 4기의 원전을 추가로 건설해 2036년부터 가동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2기 건설 입찰을 따낸 한수원은 발주사인 EDUⅡ(체코전력공사의 자회사)와 내년 3월까지 계약을 마무리하고, 2029년 공사를 시작해 2036년부터 상업운전에 들어갈 전망이다.
체코 정부에 따르면 체코 측의 총 예상 사업비는 1기 약2000억 코루나(약 12조원), 2기 약 4000억 코루나(약 24조원)이며, 이 중에서 한수원과의 계약금액은 향후 협상을 거쳐 최종 결정될 예정이다. 최종 24조원으로 추산되는 수주는 2009년 20조원의 UAE 바라카 원전을 넘어선 사상 최대 규모다. 이에 정부는 “24조원짜리 잭팟이 터졌다”며 환호하고 있다.
이번 원전 수주는 ‘탈원전 정책 폐기’를 내세우며 집권에 성공한 윤석렬 정부의 최대 성과라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가동 중이던 원전은 멈추고, 건설 중이던 원전까지 공사가 중단되던 K-원전 업계가 새로운 도약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특히 유럽에서 세계 2위 원전대국인 프랑스를 앞섰다는 점도 주목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내년 3월경 한수원과 발주사가 최종계약에 이를 때까지 수주가 확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협상자로 선정됐어도 막판까지 공사 금액과 자금동원 주체 및 방식 등을 놓고 치열한 줄다리기가 이어지기 마련이므로 신중한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2018년 22조원 규모의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 수주 당시에도 한국전력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최종 수주에는 실패한 적이 있다. 현재 체코 정부가 원전 사업비로 책정한 금액이 60억유로(약 9조원)에 불과해, 이후 가격 협상 과정에서 애초 한수원이 예상한 계약 금액보다 줄어들 여지가 크다는 전망도 있다.
최종계약까지 해결해야 할 문제 및 논란 산적
저가 수주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체코 현지 언론은 “한수원이 거의 덤핑 가격으로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했다”고 보도했다. 한국 원전의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는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지식재산권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MB정부 때 UAE 바라카 원전 수주 당시에도 한국전력은 웨스팅하우스에 기술자문료와 로열티를 지급해야 했다. 웨스팅하우스는 이번에도 “한수원은 웨스팅하우스의 동의 없이 자사의 원자로 기술을 사용할 권한이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웨스팅하우스는 이와 관련해 미국 법원에 이미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UAE 바라카 원전사업 수주 때도 “원전 강국 프랑스를 제쳤다”며 환호했지만, 나중에 불리한 계약 내용이 드러난 바 있다. 전체 수주액 186억달러 가운데 절반이 넘는 100억달러 가량을 한국 정부가 수출입은행을 통해 28년 만기로 초장기 대출해주기로 했는데, 우리나라 신용등급이 UAE보다 낮아 “비싼 금리로 돈을 빌려 싼 금리로 대출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군사지원(파병)과 관련된 이면 계약도 드러났다. 거기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UAE로부터 ‘자이드 환경상’을 수여하고 상금 50만달러를 개인 통장으로 받기도 했다.
한겨레신문은 7월 23일자 ‘체코 원전 수주, UAE 원전 전철 밟지 않아야’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체코 원전건설 사업은 15년에 이르는 장기 사업이다. 예상치 못한 돌발변수가 생길 수 있다. 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수주 자체에만 매달렸다가 손실을 본다면, 아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마지막까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야당과 일부 언론의 계속되는 ‘덤핑 입찰’ 의혹에 정부는 7월 22일 <대한민국 정책 브리핑> 웹사이트를 통해 ‘체코 원전이 저가 수주? 오해와 진실’ 게시글을 올려 이를 반박했다. 먼저, 수주를 유리하게 따내려고 지나치게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이른바 ‘덤핑 입찰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정부는 “우리 원전 기술력과 전반적인 사업 관리 능력이 그만큼 가격경쟁력을 갖추게 됐을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또 사업비로 책정된 24조원은 건설 관련 비용이고, 향후 운영비와 핵연료 사업까지 놓고 보면 그 규모가 더 커질 거라며 우려를 일축했다.
이번에 수주한 두코바니 원전 2기 외에 나머지 2기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는 지적에 관련해서는 향후 5년 내에 협상을 거쳐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체코 정부가 남은 사업까지 결정할 경우에도 한수원이 우선협상자에 선정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한수원이 이번 수주전에 내세운 APR1000 모델 조감도. APR1000은 이중 격납건물과 72시간 동안 외부의 개입 없이 냉각이 이뤄지는 피동냉각시스템 등이 구현된 3세대+형 원전이다. (출처: www.cez.cz )
체코 원전 수주, 빛 좋은 개살구일까?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7월 29일 국회에서 개최된 22대 첫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 참가하여 “체코 원전을 저가로 수주해 자칫 ‘빛 좋은 개살구’가 되는 것 아니냐”는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에 대해 “이번 사업을 너무 비관적으로 평가하는 것 같다”고 답했다.
김 의원은 “체코 원전 수주금액인 24조원은 중국에서 진행하는 사업비보다 싼데, 이것이 진정 기술력 기반의 가격경쟁력이 맞냐?”고 질문을 던졌다. 그는 수주액의 60%는 체코 기업에서 기자재를 부품 조달해야 하고, 노동력은 체코와 유럽에서 우선 고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를 고려하면 실제 건설비는 수주액의 40%인데, 그러면 원전 1기당 3조7000억원에 불과하다. 웨스팅하우스에 로열티까지 주게 된다면 남는 장사라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안 장관은 현지에서 우선 고용하는 부분에 대해 “두산이 소유한 핵심 엔진 납품업체(두산스코다파워)도 현재 협의 중이며, 이밖에도 우리 기업들이 체코와 협력하는 부분이 많다”고 대답했다. 또 그는 “우리 기업들이 완전히 배제된 채 사업의 60%만 참여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체코가 맡는 부분에서도 우리가 공동으로 기술협력을 한다”며 섣부른 판단을 자제해줄 것을 요청했다.
김 의원은 또 이번 수주에서 K-형 원전인 APR1400 대신 APR1000을 내세운 것을 지적하며 “격납 건물 및 냉각에 설계 변경할 부분이 많아 공기가 지연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공기 지연이 불가피할 경우 위약금 조항이 있을 것 같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에 대해 안 장관은 “대형 설계 변경이 필요치 않다. 이런 것을 단정해 공기 지연 우려를 언급했는데, 절대 그런 것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이어 자금 조달 리스크 문제도 제기되었다. 김 의원은 체코 정부가 1호기 건설비로 EU 집행위로부터 60억달러 유로를 대출받은 것을 꼬집었다. 그는 “그나마 2호기는 EU가 난색을 표한 상황인데, 윤 대통령은 한국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에서 금융 지원을 약속하지 않았나”라며 “저가 수주에 돈까지 대주는 것”이라고 힐난했다.
이에 안 장관은 “체코가 EU회원국인 프랑스가 아닌 팀코리아를 선정한 이유가 기한 내 적기 시공한다는 점”이라며 “우리 사업능력을 너무 비관적으로 보는 것 아니냐”고 되받아쳤다. 그러나 김 의원은 “아직 최종계약까지 체결하지는 않았지만, 무리하게 적자 수주했다가 나중에 손들 수도 있지 않겠냐”면서 “부족한 건설비를 우리가 대주고 원전을 짓다가 파산한 해외 사례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종계약까지 앞으로 반년 남짓. 남은 기간 동안 EDUⅡ와의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한국 원전의 유럽시장 진출 교두보를 마련하고 국내 원전 업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 아니면 UAE 원전의 전철을 밟을지, 뚜껑을 열어봐야 알 일이다.
1) Nuclear Alliance. 2023년 2월 유럽 내 원자력 공급망 구축을 목적으로 결성했으며, 2024년 현재 불가리아, 크로아티아, 체코, 핀란드, 프랑스, 헝가리, 네덜란드, 폴란드,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등 14개국이 가입되어 있다.
<Energy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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