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BAM, CSDDD 등 EU 보호무역 관세 규제 강화 미리 준비하면 기회, 어영부영하다간 날벼락 지난해 유럽연합(이하 EU) 이사국회의 합의를 거쳐 현재 전환기간을 운용 중인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에 이어, 올해 4월 24일(현지시간) 열린 EU 본회의에서는 역내·외 기업에 공급망 내 인권 및 환경 관련 실사를 의무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공급망 실사지침(CSDDD)’ 안건이 가결되었다. 계속해서 높아져 가는 EU의 ‘新 무역장벽’에 우리나라 기업들의 부담이 날로 커지고 있다. 엄격한 탄소배출량 산정 기준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비용과 아직 미비한 국내 인증제도로 인하여 기업들은 삼중고를 겪고 있다. EU가 이처럼 완강한 무역 정책을 펼치는 이유가 무엇인지, 우리 정부와 관련 기업들은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살펴보았다.
정리 편집부
자료 중소벤처기업부 외
 4월 24일 열린 EU 본회의에서 ‘기업의 지속 가능한 공급망 실사지침(CSDDD)’ 안이 가결되었다. (출처: 연합뉴스)
EU는 탄소 과다배출로 인한 기후 및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자 2000년대 이후 회원국 기업들의 ‘영리활동 중 배출하는 탄소량’에 대해 배출권거래제도(Emission Trade System, ETS)1) 등의 법안을 통한 엄격한 규제를 시작했다. 이로 인하여 EU 회원국 기업들이 탄소 배출 규제의 적용이 없거나 덜한 국가의 기업들과 국제거래를 진행할 때 ▲초과 배출에 따른 부가비용 납부 ▲저탄소 제품을 생산해야 한다는 압박 등의 부담 요인들로 인해 EU 회원국 기업들은 자신들의 무역경쟁력 저하에 대해 우려했다.
이에 EU는 회원국 기업들의 경쟁력 보호와 탄소중립 촉진을 위해 2021년 7월 탄소 배출 규제가 약한 국가의 기업들이 탄소 배출 규제가 강한 국가의 기업들을 상대로 재화 등을 수출할 경우, 추가비용을 지불하거나 수출 과정상 배출되는 탄소량을 감축하도록 규정한 탄소국경조정제도(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이하 CBAM)를 발의했다. 이후 CBAM은 EU 집행위원회-이사회-유럽의회 간의 입법안 합의를 거쳐 2023년 10월부터 일부 재화에 대한 무역행위에 시범 적용하는 기간(전환기간)을 설정해 현재 운용 중이며, 2026년 1월부터 적용대상 재화를 추가해 본격적으로 시행하기로(확정기간) 의결했다.
 5월 22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EU CBAM 대응 중소기업 지원방안 발표 간담회’. 앞줄 가운데가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사진: 중소벤처기업부)국내 철강업계 위협하는 CBAM 이 법안으로 인해 국내에서는 철강업계가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CBAM은 철강·시멘트·전력·비료·알루미늄·수소 등 6개 품목을 EU에 수출하는 기업이 제품 생산과정에서 발생한 탄소배출량만큼 비용을 부과하는 관세이기 때문이다. 전환기간 중에는 탄소배출량 보고의 의무만 있지만, 보고 시 현지 수입자를 통해 신고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생산자 내부 정보가 노출될 위험이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국내 철강업계는 이 같은 우려를 담은 입장을 꾸준히 피력하고 있지만 EU는 반영하지 않고 있다.
철강업계는 전환기간 중에도 현지 수입자를 거치지 않고 생산자가 직접 탄소배출량을 산출해 신고하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한국 정부와 철강업계가 EU 탄소배출량 산정 시 신고 방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영국 또한 EU CBAM 세부 지침안을 그대로 반영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영국이 지난 3월 공개한 CBAM 설계안에는 철강·알루미늄·시멘트·비료·수소·세라믹·유리가 적용 품목으로 포함되었다.
이와 함께 정부와 국내 철강업계는 ‘이중과세’ 부담 우려를 EU 측에 피력하고 있다. 국내 기업의 경우 EU CBAM이 발효된 이후에는 한국 탄소배출권거래제도(K-ETS)를 구매했어도 EU-ETS를 이중으로 구매해야 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우리 정부는 K-ETS에 따라 이미 국내에서 지불 완료한 환경비용에 대한 감면을 EU 측에 요구 중이다.
한편, 우리 중소기업들의 부담과 우려를 덜어주기 위해 중소벤처기업부(장관 오영주)는 5월 22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EU CBAM 대응 중소기업 지원방안 발표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발표된 지원방안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CBAM 대응 인프라구축 사업 (사진: 중소벤처기업부)① 수출 규모, 업종, 정규수출 여부 등을 고려한 전략적 지원 수출 규모가 일정 수준 이상인 중소기업(2023년 기준 1억원 이상 355개사 / 중소기업 EU 수출액의 98.3%)을 중심으로 탄소배출량 산정 및 검증 과정을 직접 지원한다.
② 탄소 감축을 위한 설비전환, 융자·보증 지원 등 대응력 강화 디지털 측정·보고·검증(MRV) 솔루션 개발 및 실증을 거쳐 확산해 나가고, 지원받은 기업을 대상으로 연차적으로 탄소 감축 설비 도입, 배출량 관리 소프트웨어 보급을 연계 지원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정책자금 융자와 예상되는 탄소 감축량에 대한 추가 보증을 확대 지원한다.
③ 탄소규제 정보제공 및 법·제도 등 자발적 탄소중립 지원 글로벌 동향, 지원사업 등의 정보를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전용 플랫폼을 확대·구축하고 국가 차원의 탄소규제 협의 시 배출량 산정·검증 부담 경감 등 중소기업계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한다. 아울러 중소기업의 자발적 탄소 감축 지원을 위한 「(가칭)중소기업 탄소중립 촉진법」 제정을 추진한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5월 30일에는 중소벤처기업부,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관세청 등 관계부처 및 유관기관 합동 「제2회 EU 탄소국경조정제도 대응 설명회」를 개최하여 수도권 기업 관계자 300여 명을 대상으로 탄소배출량 산정방법의 이해, 탄소배출량 산정 실습 및 정보제공 양식 작성방법, 기관별 지원사업 등을 공유했다. 2024년 중소기업 CBAM 대응 인프라구축 지원사업 모집공고의 자세한 내용은 중소벤처기업부 누리집 (www.mss.go.kr ), 중소벤처24 누리집 (www.smes.go.kr ), ESG 통합플랫폼 (kdoctor.kosmes.or.kr/esgplatform )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공급망 실사지침 주요 추진 경과 (자료: 브뤼셀 무역관)CSDDD, 중국 견제하기 위한 노림수일까 EU는 지난 4월 24일(현지시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공급망 실사지침(Corporate Sustainability Due Diligence Directive, 이하 CSDDD) 안을 가결했다. EU 각 회원국의 국내 입법을 거쳐 이르면 2027~2029년부터 기업 규모별로 순차 적용 예정이다.
CSDDD는 기업들에게 경영 전반 실사계획 수립, 공급망 내 인권과 환경 영향 요인 자체평가, 예방 및 완화조치 등을 취하도록 강제한다. 노동조합 및 관련 단체 등을 위한 고충처리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며, 실사 내용도 의무 공시해야 한다. 위반 시 전 세계 연 매출액의 최소 5% 이상의 과징금이 부과된다. CBAM에 이어 한 단계 더 높아진 ‘무역장벽’에 우리나라 기업들의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EU가 이처럼 완강한 무역 정책을 펼치는 이유로 ▶EU가 주도하고 있는 탄소배출권 시장에서의 탄소배출권 기축통화화를 통한 세계 경제 주도권 장악 ▶탄소배출원이 탄소배출 규제가 강한 국가에서 약한 국가로 이동하는 현상인 ‘탄소 누출’ 방지 ▶정부 주도하에 태양광·전기차 등 신성장 사업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고 있는 중국 견제 등을 꼽았다.
일각에서는 최근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재편된 글로벌 경제의 패권을 되찾기 위한 카드가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CBAM이라는 제도를 통해 탄소세를 부여해 공급하지 못하는 기업을 퇴출시키면 자연히 전 세계 산업 공급망이 재편된다. 이를 통해 중국을 견제함과 동시에 세계 경제 주도권을 쥐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
CBAM은 전 세계 최대 배출권 거래시장인 EU 배출권거래제도(EU-ETS)에서 비용을 부과하는 만큼 수출 기업에 비용을 지불하게 하는 형태이고 CSDDD도 비슷한 맥락이다. 결국 CBAM과 CSDDD 모두 온실가스 감축에 있어서 EU만 부담을 지지 않겠다는 것을 제도화하여 자국의 기업이 해외로 이동하는 것을 방지하려는 목적이다. 장기적으로는 중국에 대한 견제라고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 주장이 힘을 얻는 이유는 CSDDD 가결보다 한 달 앞선 3월 20일에 EU가 최종 승인한 핵심 원자재법(Critical Raw Materials Act, 이하 CRMA) 때문이다. CRMA는 EU 산업에 필수적인 중요 원자재를 역내에서 확보하고 해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법으로,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안(IRA)과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CRMA 법안은 ▲핵심원자재 34개 및 전략원자재 17개 지정 ▲2030년까지 EU 연간 소비량 대비 채굴 최소 10% ▲정제·가공 최소 40% ▲재활용 최소 25%에 해당하는 전략원자재의 역내 조달 등을 포함하고 있다.
핵심원자재란 리튬, 니켈, 코발트 등으로 중국에서의 수입 비중이 매우 크므로, CRMA는 사실상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법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동력 배터리 제조용 광물에 대한 중국의 점유율은 흑연 70%, 망간 95%, 코발트 73%, 리튬 67%, 니켈 63% 등으로 압도적으로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EU는 희토류와 리튬을 각각 97~98%가량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EU 국내총생산량(GDP)의 절반가량을 담당하는 프랑스·독일·이탈리아는 CRMA 가결 직후 핵심원자재 수급을 위한 공동 플랫폼을 설치하고, 공동 프로젝트 진행 및 데이터 공유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세계 경제 흐름의 동향과 앞으로의 향방을 가늠하고, 우리 기업들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는 본격적으로 막이 오른 EU 주요국들과 중국의 기싸움을 주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국내 인증제도 미비로 난항 예상 한편, EU 배터리 규제, CBAM, CSDDD 등 글로벌 탄소규제가 강화되면서 우리나라 기업의 탄소배출량 산정 요구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내 중소기업들은 해외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국내 인증제도 때문에 사업 추진이 어렵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기업들은 특히 배출량 산정에 따른 비용 부담을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고 있다. CBAM은 매우 엄격한 배출량 산정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원료채취부터 소재가공, 부품생산, 제품생산, 물류유통, 소비사용, 폐기매립까지 제품생산 전 과정의 탄소배출량 보고가 요구된다. 이와 함께 기업 활동과 관련된 모든 간접적인 배출량을 의미하는 스코프3(Scope3)까지 탄소 배출 측정 경계가 확대되고 있어 수출업계의 난항이 예상된다.
현재 글로벌 고객사들은 국내 인증기관의 배출량 산정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 기업들은 해당 국가의 기준에 따라 해외 인증기관을 통해 비싼 비용을 지불하면서 인증을 받아야 한다. 해외 인증기관에서 인증 신청 시 품목당 약 3000만원에서 5000만원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500만~700만원이면 가능한 국내 인증비용 대비 10배 가까이 비싼 가격이다.
비용 부담뿐만 아니라 전 과정 평가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기초 데이터베이스(Life Cycle Inventory Database, 이하 LCI DB) 품목도 해외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적은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국내에서 생산된 원료와 부품을 사용하는 경우에도 국내 데이터 확보가 어려워 LCI DB를 활용하고 있다. 때문에 공급망 기업 간 탄소배출량 정보를 안전하고 쉽게 주고받을 수 있는 데이터 수집·관리 플랫폼 구축과 함께 국내 인증이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도록 해외제도와 국제협력체계 마련이 시급하다.
 법무법인 세종 박효민 변호사가 「CSDDD 주요 내용 및 전망」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출처: 법무법인 세종 youtube 갈무리)철저한 사전 대비가 답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5월 9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와 공동으로 「EU CSDDD 대응 설명회」를 개최했다. 우리나라 기업이 공급망 실사 대응력을 갖출 수 있도록 CSDDD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대응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였다.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은 개회사를 통해 “대기업 외에 공급망 내 중소기업도 실사의 간접적 영향권에 포함될 수 있다”며 “실사 의무는 역내·외 모든 기업에 무차별하게 적용되므로 선제대응 시 오히려 우리에게 기회 요인이 될 수 있다”며 철저한 사전 대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설명회는 ▲CSDDD 주요 내용 및 전망(법무법인 세종) ▲K-ESG 가이드라인 등을 활용한 실사 대응 방안(한국생산성본부) 발표로 이어졌다. ▲2023년 발표된 독일 공급망 실사법 대응 사례(독일 로펌 Taylor Wessing)도 소개됐다. 이날 설명회를 통해 산업부는 “유럽발 공급망 실사의 기업 부담 요인을 최소화하기 위해 각국 후속법 및 EU 가이드라인 입안 시 긴밀히 협의하는 한편, 향후 3~5년 기간 동안 기업의 실사 대응력 강화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입장을 전했다.
그렇다면 기업들은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실사 의무 기업들은 먼저 공급망 내 직접적인 협력사에 행동강령 또는 예방 규칙을 안내하고 이를 준수하겠다는 계약상 보증을 받아야 하며, 이러한 행동강령을 직접 협력사의 공급망에 있는 간접 협력사에도 전달해 간접적으로 실사 이행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구체적이고 세밀한 규칙 수립이 선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현재 기업에서 활용하고 있는 정책, 계약서 템플릿, 구매 조건, 협력사에 대한 지침 등 인권 및 환경 보호와 관련된 모든 문서를 지금부터라도 재검토해야 한다.
만약 행동강령이나 관련 문서들이 모호하게 작성되어 있다면,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한 내용을 포함하도록 수정해야 한다. 기업이 협력사와의 계약상 보증을 얻지 못하는 경우라면, 보증을 얻기 위해 기업이 기울인 노력을 입증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모든 관련된 증빙 내용을 문서로 만들어 두는 것이 좋다.
한편, 간접적인 공급사나 협력사의 경우, 직접적인 적용대상이 아니더라도 EU 기업과의 거래 중 계약상 보증 등을 통해 일정 부분에서의 실사 이행이 요구될 수 있으므로 지금부터 단계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1) EU 회원국 내에 지정된 사업체들이 경매를 통해 탄소 등 오염물질을 일정 수준까지 배출할 권리(배출권)를 할당받고, 그 일정 수준 이하로 배출한 이를 타 기업과 거래할 수 있도록 허용한 제도.
<Energy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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