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지 않는 전기를 직접 보려는 욕구는 전기를 잘 몰랐던 때부터 있었다. 실용화를 시작한 이후 이 욕구는 한층 강해졌다. 그중 하나는 전신이었고, 다른 하나는 전력이었다. 1866년 대서양 해저 전신 부문에서 거울 검류계(Mirror Galvanometer)의 반사광을 눈으로 보며 신호를 판독했다. 일렉트로닉스를 이용한 파형 관측은 1897년 브라운의 전자선 발견으로 시작됐다. '시간에 따른 진폭 변화의 가시화'를 담당한 것은 오실로그래프와 오실로스코프였다. 최초 기기는 기계 부품에 지나지 않았으나, 오늘날 모두 일렉트로닉스로 진화하며, 컴퓨터와 소프트웨어에서 기능을 결정하는 가상 오실로스코프로까지 발전했다.
전신 파형 관측과 기록 먼저, 전기 신호 검출을 책임진 것은 검류계다. 검류계는 유일한 전기·각도 변환기로, 변환된 각도는 광 레버에서 확대 증폭됐다. 모스가 워싱턴과 볼티모어 간 전신 실험에 성공한 것은 1844년이며, 그 후 철도와 함께 전신망이 아메리카 대륙에 보급됐다. 한편, 해저 전신은 1851년 도버 해협에서 성공을 거뒀다. 이를 계기로 1857년 영국과 미국 간 대서양 해저 전신 계획을 시작했는데, 영국 발렌시아와 캐나다 뉴펀들랜드 사이를 해저 전선으로 연결하는 계획이었다(<그림 1> 참조). 두 번의 실패 끝에 1858년 일단 성공은 했으나, 빅토리아 여왕과 뷰캐넌 대통령이 축전을 교환하는 데만 16시간이 걸렸다. 3000㎞나 떨어진 장거리였던 탓에 신호 질이 떨어져 수신기 계전기가 동작하지 않은 데다 판독이 어려울 정도로 신호가 일그러져 몇 번이나 재전송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수신기에는 거울 검류계를 사용했다. 전신사는 거울 반사광을 눈으로 좇으며 모스 신호를 판독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불통이 돼 버렸고, 남북전쟁 후인 1866년에야 본격적으로 개통됐다. 나중에는 캘빈이 발명한 사이펀 레코더Siphon Recorder를 사용했다(<그림 2-(a)> 참조). 신호를 잉크로 기록하고 파형에서 모스 신호를 판독했다(<그림 2-(b) 참조).
 윌리엄 더델과 전자 오실로그래프 더델 | 더델(William DuBois Duddell, 1872~1917)은 영국 태생 물리학자다. 영국과 프랑스에서 기계기술을 배웠고, 나중에 리버풀대학 전기공학 교수가 됐다. 어느 날 교류 파형을 재빨리 관측하려고 한 것이 전자 오실로그래프 발명의 계기였다. 자석 사이 틈새에 코일과 거울을 매달아 거울의 빛 반사를 인화지에 기록한 뒤 이 인화지를 현상해 겨우 파형을 관측할 수 있었다. 더델의 가동 코일은 두 줄의 폭이 0.18㎜, 두께가 0.008㎜인 띠 모양의 얇은 판으로 매달린 거울이었다. 자석 틈새는 겨우 0.04㎜였다. 전력업계를 양분한 직류 교류 논쟁은 1890년대 교류 시스템이 우위성을 인정받으며 장거리 전력 전송을 시작했다. 그러나 교류 현상을 해명하는 데는 도구가 필요했다.
케임브리지과학기기사와 전자 오실로그래프 | 더델은 전자 오실로그래프를 케임브리지과학기기사(Cambridge Scientific Instrument Company)에 팔아넘겼다. 이 회사는 호러스 다윈(Horace Darwin, 1851~1928)과 듀 스미스(Albert George Dew-Smith, 1848~1903)가 1881년 설립한 기업으로, 케임브리지대학 연구에 필요한 기기 제조가 목적이었다. 1898년 전자 오실로그래프를 판매하자 GE(General Electric)사, WH(Westinghouse Electric)사, 지멘스사 등이 앞 다투어 전자 오실로 그래프를 완성했다. 일본에서도 전기 시험실과 대학에서 수입해 사용했으나 가격이 비쌌다. 전기 시험실의 요청을 받아 요코가와전기, 안도전기 등이 일본에서 생산을 시작한 것이 1930년대였다. 전자 오실로그래프를 철도 차량 등 기계 구조물 시험 검사에도 사용했다(<그림 3> 참조). 다채널을 원하는 목소리가 높아짐에 따라 24채널 전자 오실로그래프가 1950년대에 만들어졌다. 자외선을 광원으로 했기에 따로 현상할 필요가 없었다.
브라운관 오실로스코프 페르디난트 브라운 | 브라운관 오실로스코프는 1897년 페르디난트 브라운(Ferdinand Braun, 1850~1918)이 실험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브라운은 독일 텔레풍켄사의 기초를 만든 인물이다. 브라운은 긴 유리관 안에서 방전 실험을 하던 중 음극에서 나온 전자류가 다른 끝에 초점을 연결하는 것을 발견하고 형광물질을 칠하면 빛이 난다는 사실, 외부 자계에서 전자류가 바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것이 후에 음극선관(CRT(Cathode Ray Tube), 브라운관)이 된다(<그림 4> 참조).
GR사와 오실로그래프 | 미국 동해안에서 명문 계측기를 제조하는 GR(General Radio)사는 프로용 브리지, 주파수 발진기 등에서 시장을 구축했다. 1929년에 하트레일 발진기(Hartley Oscillator)와 비트 방식 발진기 등을 주력 제품으로 했으며, 브라운관 오실로스코프에도 일찍부터 도전장을 던졌다. 1931년에 완성한 506A형은 ▲낮 동안에도 보이는 브라운관일 것 ▲주사走査한 번으로 사진이 찍히는 밝기일 것 ▲스폿 지름 1밀리 이하로 초점도 현장에서 조정할 수 있을 것 등 엄격한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제품이다. 브라운관과 전원부는 각기 다른 박스이며, 신호 증폭기와 스위프 발진기(Sweep Oscillator, 톱니 모양) 역시 다른 박스였다. 브라운관은 독일에서 수입했다. 주파수 상한 200킬로사이클, 브라운관의 가속 전압 3000V, 편향 감도 100V/1인치였다( 참조). GR사 경영진은 오실로스코프는 복잡한 기기고 시장도 그리 넓지 않을 것으로 판단해 사용권을 사르노프(David Sarnoff)의 RCA사와 알렌 듀몬트의 듀몬트사에 매각했다. RCA사는 라디오 수리업자에게, 듀몬트사는 연구자와 기술자에게 각각 판매해 판로를 넓혀 나갔다.
듀몬트사 | 알렌 듀몬트(Allen B. Dumont, 1901~1965)는 전기 기술자, 발명가, 기업가로 활약한 인물이다. 1931년에 듀몬트연구소를 설립하고 브라운관 CRT의 연구와 제조를 목표로 했다. 당시 독일 수입품이라도 제품 수명이 수십 시간에 그쳤던지라 듀몬트는 1000시간 이상으로 수명을 늘리는 데 도전했다. 또한, 오실로스코프용 브라운관은 X, Y축 모두 정전 편향을, 텔레비전용 브라운관은 전자 편향을 사용했다. 오실로스코프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큰 수요가 없었으나, 전쟁 후 개발자와 수리업자에게 거대 시장을 제공했다. 오실로스코프의 평가 기준, 주파수 대역과 감도는 이때 정해졌다. 듀몬트사는 세계 유수의 오실로스코프 제조사로 성장했으나, 1948년 트리거 스위프 기능을 가진 텍트로닉스사에 자리를 넘겨줬다.
트리거 오실로스코프 오실로스코프는 일렉트로닉스 기술의 집적이다. 기본 기술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실용화한 레이더와 텔레비전 기술이다. 미국에서 1940년부터 1945년에 걸쳐 개발을 담당한 MIT(매사추세츠공과대학) Radiation Laboratory의 레이더 연구는 28권의 연구서《Radiation Laboratory Series》로 태어났다. 이 연구서는 진공관 회로, 펄스 기술, CRT기술 등에서 오실로스코프 개발 기술자의 지침서가 됐다.
텍트로닉스사 | 1946년에 볼룸(Howard Vollum,1913~1986)과 머독(Jack Murdock, 1917~1970)이 설립한 기업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군대 기술자였던 두 사람은 전쟁 후 정부의 방출 자재를 사용했다. 선봉 격인 트리거 오실로스코프는 기존 오실로스코프와 달랐다. 관측하는 파형이 브라운관 면 위에서 딱 멈췄으며 파형 진폭도 정확하게 읽을 수 있었다. 트리거 오실로스코프는 세로축의 교정용 전원과 가로축의 교정용 타이밍 시간 발생 기구를 내장해 자기 교정을 할 수 있었다. 브라운관은 5인치(130㎜)가 중심이며 사용 범위도 30 까지 확대됐다. 또한, 수직축 증폭기 끝에 지연 회로가 있었다. 관측파가 도착했을 때 맨 처음 스위프 회로를 동작시키므로, 그 지연 시간을 메우기 위해 약 100㎱의 지연회로를 달았던 것이다. 이 게이트를 구동하는 펄스를 총의 방아쇠인 트리거 펄스Trigger Pulse라고 불렀다. 또한, 전면에서 교체할 수 있는 수직축·수평축의 증폭기를 마련했으며, 다현상, 차동 증폭 회로 등의 유닛을 사용할 수 있어 자유롭게 활용도를 높였다(<그림 6> 참조).
사용자를 컴퓨터, 통신, 반도체, 교육 기관, 정부, 군, 항공 사업, 자동차 산업 등의 분야로 넓혀 오실로스코프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데까지 성장했다. 그러나 고주파 영역을 겨냥해 1000㎒대를 목표한 결과, 휴렛팩커드(HP)사와 경합하느라 일시 경영 부진에 빠지기도 했다. 현재는 디지털 오실로스코프의 중심 기업으로 자리잡았다.
오실로스코프의 구조와 보급 | 볼룸은 전쟁 중에 군대에서 전자 기기 서비스를 담당한 경험 덕에 용이한 기기 서비스에 투철했다. 진공관의 소비 전력도 500W로 크고, 열을 내장 팬으로 냉각했다. 내부 회로는 어셈블리Assembly 전부를 분해해 수선 클리닝을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주사 패널 디자인이 뛰어났는데, 알루마이트Alumite의 마지막 공정 패널과 검붉은 동축 손잡이가 근대적이었다. 일본에서 이와사키통신기, 히타치제작소, 도시바 등이 트리거 오실로스코프를 발매했으나, I사의 제품명이던 '싱크로스코프'가 일본 내 통칭이 됐다. 1965년에 합병회사 소니 텍트로닉스가 발족해 오실로스코프를 트랜지스터화해 한층 소형화된 형태로 보급했다.
샘플링 오실로스코프와 HP사 HP사는 1939년 미국 팔로알토에 창설한 기업이다. 최초 제품은 201B 저주파 발진기였다. 고객은 가까이에 있던 월트디즈니의 녹음 스튜디오였다. HP사는 그때까지 시장에 없던 고객을 사로잡아 세계 유수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HP사는 주로 카운터 마이크로파 기기를 제조해 오다가 1950년대에 오실로스코프 시장에 참가했다. 발단은 텍트로닉스사가 '판매를 대리점 경유에서 직판 체제'로 바꾼 데 있다고 알려졌다. 대리점을 HP사가 저지한 것이다. HP의 혁신적인 제품은 1960년의 샘플링 오실로스코프였다. 샘플링에 HP어소시에이트사의 계단 복구형 다이오드(Steprecovery Diode)를 채용했다( 참조). 이것이 500 상당의 샘플링 오실로스코프 185A가 된다. 고주파 신호를 타이밍을 늦추면서 샘플링하고 고주파의 반복 신호를 저주파로 변환해 표시한다. HP사는 차례로 샘플링을 고속화해 10 상당까지 만들어냈다. 또한, 디지털 전압계 등 측정기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HP-IB를 확립했으나, 1999년 계측기 부문을 애질런트사로 분리하고 현재는 애질런트사가 디지털 계측기 분야에서 독자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아날로그 디지털 변환기(A/D 변환)가 발명되자 우선 디지털 전압계(Digital Voltmeter)로 채용했다. 뒤이어 A/D 변환기의 고속화, 고분해화가 진행되고 화상·음성 영역으로 확장해 저비용 대용량 반도체 메모리가 디지털 오실로스코프로 길을 열었다.
측정 대상 | 1970년대 이후 오실로스코프의 측정 대상이 점차 디지털로 변해 갔다. 아날로그 음성을 새긴 78회전의 SP 레코드는 디지털 기록인 CD로 바뀌었다. 1990년에는 LP 레코드도 시장에서 모습을 거의 감췄다. 연구, 생산·검사, 서비스까지 모든 단계에서 오실로스코프를 사용했다. 또한, 영상과 음성 등을 위해 개발한 고속 아날로그 디지털 변환 회로, 염가의 메모리 등 디지털 소자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으로 변모했다. 제조 라인도 변화의 물결이 일었다. 아날로그 시대엔 계측기 표시를 보면서 프린트 기판상의 트리머Trimmer 등을 조정했으나, 이러한 조정 작업이 갑자기 확 줄어들고 GO/NOGO를 판정하는 작업으로 바뀌었다. 계측기도 사용자 요구에 맞춘 체제와 기기 개발이 필요해졌다.
디지털 오실로스코프(Digital Storage Oscilloscope : DSO) | 디지털 오실로스코프는 입력 신호를 시작으로 A/D 변환기로 디지털화해 직접 메모리에 기억시키고 메모리에서 읽어낸 데이터를 바탕으로 표시하는 방식이다( 참조). 표시기는 래스터 주사(Raster Scan) 방식의 CRT나 LCD다. 1970년대 고속 A/D 변환기의 분해능은 8비트, 파형 메모리는 1K워드 정도였으나, 고속 광대역화가 진행됨에 따라 현재는 샘플링 속도 1기가샘플/초, 파형 메모리 8M워드, 아날로그 입력 대역 500 에 이르렀다. 디지털 오실로스코프가 급속하게 보급된 데는 측정 대상으로 디지털 데이터가 많아진 것, 아날로그 오실로스코프와 같은 연속 신호도 관측할 수 있게 된 것에 이유가 있다. 또한, 메모리에 기억된 신호를 바탕으로 직접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다. 데이터를 수치화해 화면에 표시하거나 USB 및 HPIB로 외부와 데이터도 교환할 수 있다. 디지털 방식의 결점이라면 샘플링 주파수 저하와 오표시가 있다. LeCroy사를 창설한 월터 르크로이(Walter LeCroy)가 디지털 오실로스코프를 발명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애질런트사, 텍트로닉스사 등 경쟁 세계 속에 있어 명확하다고 할 수는 없다.
디지털 포스퍼 오실로스코프(Digital Phosphor Oscilloscope : DPO) | DSO는 파형 시간과 진폭을 표시한나, DPO는 여기에다가 파형의 움직임을 알기 쉽게 표시한다. 진폭 빈도 정보를 화면에 휘도나 색을 달리해 표시한다. 이것은 신호를 병렬 처리해 화면에 보내려는 고민이 계기였다. 포스퍼란 화학 형광체와 동등한 움직임을 전자적으로 행한다고 강조하는 의미에서 붙인 명칭으로 보인다. 인간의 힘으로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는 방법은 향후 고급 디지털 오실로스코프의 방향을 시사한다.
향후 방향은 어디로 가상 오실로스코프(Virtual PC Oscilloscope) | 가상 오실로스코프란 '표준 규격 컴퓨터에 애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 플러그인 보드 등의 하드웨어를 정비하고 일체화해 계측기의 기능을 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오실로스코프에서 '전기 신호를 디지털화하는 A/D 변환 카드'는 필요하지만, USB를 통해 PC로 데이터를 보내면 나중에 PC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데이터를 처리하고 표시할 수 있다. 실험도할 수 있다. 시장엔 이미 해설서《LabVIEW 입문》을 판매 중이며(<그림 9> 참조), 혼자서 PC 계측기를 조립할 수 있다.
경제적인 디지털 오실로스코프 출현과 키트 | 일본에서 이동전화는 1979년 구일본전신전화공사의 자동차 전화 서비스에서 시작한다. 지금은 누구든 휴대전화를 가진 시대가 된 동시에 디지털 가격 파괴의 시대가 됐다. 휴대전화가 쓰고 버리는100엔짜리일회용이될것이라는 예측이 있었을 정도며, 가격 파괴는 컴퓨터부터 시작해 주변기기에 까지이른다. 지금까지 오실로스코프는 광대역 폭, 대용량 메모리, 높은 샘플링 레코드라는 고성능 기기였다. 포스퍼 오실로스코프는 발매 당시 50만 엔이나 했으나 일반 디지털 오실로스코프라면 2만 엔대에 살 수 있다. 더욱 싼키트도 있다. 일찍이 1960년대쯤에 미국 히스키트사가 오실로스코프 키트를 발매했다( 참조). 디지털 오실로스코프도 자기가 가진 소프트웨어로 자유롭게 즐기는 시대가 올 것이다.
정리 전화영 기자
애질런트, 63GHz 아날로그 대역포글 가긴 오실로스코프 출시 빠른 신호를 정확확하고 완벽하게
한국애질런트(대표이사 김승열)는 4월 9일 한국애질런트 본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2채널 63GHz 대역폭과 4채널 33GHz 대역폭을 갖춘 'Infiniium 90000 Q-시리즈 오실로스코프'를 발표했다. 이날 애질런트 부사장이자 오실로스코프 사업부 총괄 매니저인 제이 알렉산더가 방한해 40여 분간 90000 Q-시리즈를 직접 소개했다. 오실로스코프의 성능 평가에서 중요한 지표가 되는 ▲대역폭(Bandwidth) ▲노이즈Noise ▲지터Jitter에서 90000 Q-시리즈는 가장 낮은 노이즈를 구현하고 최저 지터 측정 플로어로 최상의 측정 정확도를 보장하는 제품임을 강조했다. 90000 Q-시리즈는 최대 대역폭이 63GHz의 -3dB 포인트로, 기존에 최대로 알려진 60GHz 대역폭의 장벽을 넘어섰다. 33GHz 모델은 엔지니어가 모든 4채널에서 아무런 제약 없이 트리거와 신호를 캡처한다. 90000 Q-시리즈는 RealEdge라는 신기술을 적용하고, 애질런트가 사용하는 통합 집적 회로와 멀티칩 모듈 패키징을 개선했다. 제이 알렉산더 총괄 매니저는"애질런트는 지난 5년간 깊은 메모리, 최저 노이즈 플로어와 높은 대역폭의 오실로스코프를 발표해 왔다"라며," 90000 Q-시리즈는 이러한 모든 혁신의 정점이다"라고 말했다. |
<Energy News>
http://www.energ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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