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물에서 중금속을 추출하는 파이토마이닝 기술 화제 가능성 무궁무진, 상용화까지는 더 많은 연구 필요 파이토마이닝(phytomining)이란 식물을 사용하여 토양에서 중금속을 추출하는 기술이다. 금속이 많은 토양에서 잘 자라는 식물 종들은 자라면서 주변 금속을 빨아들인다. 식물 내부에 축적된 이 금속을 추출하면 높은 순도의 원료를 뽑아낼 수 있다. 파이토마이닝은 핵심 금속의 공급 방식을 다양화하고, 기존 광산에 대한 지속 가능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정리 편집부 참조 과기정통부
 말레이시아의 한 나무에서 채취한 청록색의 수액은 전 세계 니켈 제련소에서 공급되는 광석보다 훨씬 더 농축된 니켈이다. (출처: New York Times)
파이토마이닝이란 그리스어로 식물을 뜻하는 파이토(phyto)와 채굴을 뜻하는 마이닝(mining)을 합쳐 만든 신조어로, 식물을 사용하여 토양에서 중금속을 추출하는 기술이다. 1983년 미국농무부(USDA)의 농업학자인 루퍼스 채니에 의해 처음 제안되었고, 루퍼스 채니와 앨런 베이커(멜버른 대학교 식물학 교수)가 1996년에 파이토마이닝을 처음 테스트했다.
일반적으로 식물에게 금속이 많은 토양은 독이 된다. 그러나 이런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식물 종들이 있다. 이들은 자라면서 주변 금속을 빨아들인다. 식물 내부에 축적된 이 금속을 추출하면 높은 순도의 원료를 뽑아낼 수 있다. 식물학자들은 금속을 고농도로 축적하고 있는 식물들을 대상으로 파이토마이닝의 잠재력을 실험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한 나무에서 채취한 청록색의 수액은 전 세계 니켈 제련소에서 공급되는 광석보다 훨씬 더 농축된 니켈이다. (출처: New York Times)
게르마늄 추출에 효과 탁월한 해바라기 게르마늄(Ge)은 1886년 독일에서 처음 발견된 원소로, 트랜지스터가 처음 만들어진 이후부터 부품 소재의 하나로 사용되고 있으며 현재는 반도체 소재로도 사용되고 있다. 게르마늄은 전 세계 도처에 분포하고 있지만, 흙 속에 포함되어 있어 추출하기가 어렵다. 이에 독일의 프라이브루크 대학 연구진은 최근 식물에서 게르마늄을 추출하는 새로운 방법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게르마늄이 풍부한 토양에 해바라기나 옥수수 같은 식물을 기르고 게르마늄 원소를 빨아들이도록 한 다음 뿌리나 새싹으로부터 게르마늄을 추출해냈다. 아직 연구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수확한 원소의 양은 적었지만, 연구진은 효율성을 더욱 높여 다량의 게르마늄을 추출하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다.
해바라기와 옥수수는 중금속을 빨아들이는 효과가 탁월하다. 해바라기는 우라늄이나 납, 비소, 칼륨 등 여러 가지 중금속을 흡수할 수 있다. 칼륨은 세슘과 화학적 성질이 비슷한데, 이를 근거로 전문가들은 방사성 동위원소 중 하나인 세슘도 빨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실제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주변에 시범적으로 해바라기를 심는 실험을 한 적도 있다. 그러나 아직 후쿠시마 원전 주변의 방사능 오염 농도가 높은 탓에 해바라기가 제 기능을 발휘하기도 전에 죽거나 돌연변이가 되고 말았다. 이처럼 극심한 상황을 제외하면, 해바라기는 충분히 강력한 환경정화 능력을 보이고 있다.
 리노레아 닉코리페라 (출처: researchgate)
니켈 등 중금속 흡수력 탁월한 식물들 최근 필리핀에서는 월등한 중금속 흡수능력을 가진 신종 식물인 ‘리노레아 닉코리페라(Rinorea Niccolifera)’가 발견됐다. 필리핀국립대학교의 에드위노 페르난도 교수는 “이 식물이 독성 중금속을 1만8000ppm가량 축적할 수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며 “이는 다른 식물들의 평균치보다 1000배나 많은 수치이다”라고 전했다.
리노레아 닉코리페라는 다 자란 식물 세포 안의 미세 구조물인 ‘액포’ 속에 금속을 축적하는데, 이는 인간의 장기 중 간과 유사한 기능을 한다. 즉 금속의 독성으로부터 세포의 나머지 부분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액포 덕분에 식물체에 피해 없이 금속을 추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뉴칼레도니아 열대우림에 서식하는 ‘피크난드라 아쿠미나타(Pycnandra acuminata)’ 또한 니켈을 잘 흡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나무껍질을 긁으면 최대 25%의 중금속으로 구성된 식물 수액이 나오는데, 수액의 니켈 함량이 높기 때문에 청록색을 띤다.
 리노레아 닉코리페라 (출처: researchgate)
토양 정화에 탁월한 과축적 식물들 이와 같은 식물들은 중금속으로 오염된 광산 부지를 정화시키는데도 효과적이다. 전통적인 채굴 방식은 토양 침식, 수질 오염 등 심각한 환경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 반면 파이토마이닝은 다량의 토양이나 암석을 제거할 필요가 없으며, 유해한 폐기물을 생성하지도 않기 때문에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적다.
이처럼 니켈, 아연, 코발트 같은 광물이나 금과 같은 금속을 자석처럼 빨아들이는 것으로 알려진 과축적 식물(hyper accumulator)은 약 700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속성 땅에서도 잘 자라는 이 식물들은 주변에 다른 종이 번성할 수 없도록 죽이는 특징도 가지고 있다. 생존하기 위해 억센 성질을 가졌다는 방증이다.
 말레이시아의 한 나무에서 니켈을 채취하고 있는 연구팀 (출처: New York Times)
친환경적인 ‘식물 광물 제련소’ 기대 말레이시아에서는 2015년부터 파이토마이닝 기술을 이용해 니켈을 수확하고 있다.
앨런 베이커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말레이시아 보르네오섬의 한 시골 마을에서 소규모로 임대한 토지에서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팀은 6~12개월마다 니켈을 많이 축적한 식물을 30cm가량 잘라내, 여기서 얻어낸 금속을 태우거나 수액을 짜내는 실험을 했다. 이 실험으로 연구팀은 약 226kg의 니켈 구연산염을 얻었는데, 이는 국제 상품 시장에서 수천 달러에 거래되는 양이었다.
이후 연구팀은 규모를 늘려 50에이커(약 6만평)의 땅에서 금속을 채취하고 있다. 베이커 박사는 “식물이 토양의 광물을 체내에 흡수할 뿐 아니라,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저장해놓았다”며 “이런 식물들을 이용하면 가장 환경적이고 효율적인 ‘식물 광물 제련소’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농장에서 코코넛과 커피를 생산하는 것처럼, 농장을 통해 기초 금속과 희귀광물을 채취해 시장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전통적인 구리 채굴 현장
해결하고 연구해야 할 단점도 많아 이처럼 많은 장점과 성장잠재력을 가진 파이토마이닝의 단점은, 금속을 흡수할 수 있을 만큼 식물이 자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식물에서 충분한 양의 금속을 축적하는데 수 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산업용으로 필요한 금속을 확보하는 데에는 속도 측면에서 덜 적합할 수도 있다. 또 파이토마이닝에 사용된 식물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먹이사슬에 유입되었을 때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서도 되짚어 봐야 하고, 식물이 흡수한 금속이 지역 상수도로 유입되는 것을 방지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
또 파이토마이닝은 아직까지는 전 세계 수요를 충족할 만한 금속 수확량을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생산량이 충분하다면 비용 측면에서 파이토마이닝은 분명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금속 농도가 높은 식물을 대량으로 수확하는 것이 광산에서 금속을 추출하는 것보다 비용이 더 많이 든다.
게다가 파이토마이닝의 성공은 자연조건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날씨, 고도, 토양 품질과 같은 재배 조건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때문에 날로 극심해지고 있는 기후변화 역시 파이토마이닝의 성패를 좌우할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기존 채굴 방식은 금속을 90% 이상 회수할 수 있는 반면, 식물 채굴은 1~5%의 수율에 불과한 경우가 많아 효율성이 훨씬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관해 포스코홀딩스 LiB소재연구센터 유승재 상무는 “파이토마이닝 기술은 아직까지 이론에 불과하다”며 “차라리 기존 금속의 리사이클 기술에 더 집중하는 편이 효율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캐롤라인 힐리 디자이너는 바이오마이닝 금속을 혼합물 형태로 활용함으로써 더 지속가능한 금속 정제 기술은 아직 개발 중이라는 뜻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출처: H2ER?)
기존 광산에 대한 효과적인 대안 될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이토마이닝이 미래에 가져올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앞으로는 스마트폰 같은 디지털기기의 소재들 대부분이 식물에서 채취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효율성을 높이고 채굴 속도를 앞당긴다면, 금속 수요가 늘어나는 가까운 미래에 훨씬 지속 가능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전기차에 사용되는 리튬 이온 배터리를 만드는데 꼭 필요한 니켈과 같은 금속은 수요가 많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환경 문제로 인해 광업에 대한 지역사회의 혐오감이 컸기에 이러한 수요를 충적하기 위해 새로운 광산을 건설하기는 만만치 않다. 이런 점에서 파이토마이닝은 핵심 금속의 공급 방식을 다양화하고 기존 광산에 대한 제안을 제시하는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파이토마이닝을 국내에 본격적으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국내의 토양과 기후를 충분히 고려한 식물체의 연구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캐롤라인 힐리 디자이너는 바이오마이닝 금속을 혼합물 형태로 활용함으로써 더 지속가능한 금속 정제 기술은 아직 개발 중이라는 뜻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출처: H2ER?)
식물 채굴 금속으로 만든 반지 공개 최근 영국의 한 주얼리 브랜드가 식물로 수확한 금속으로 만든 최초의 반지를 공개해 화제다. 소재 연구가이자 디자이너인 캐롤라인 힐리가 추진하는 연구 프로젝트 「미래의 금속들」에서 공개한 반지에는 식물이 뿌리를 통해 흡수·축적한 은, 티타늄, 납, 니켈, 구리, 아연 등의 금속이 사용됐다.
캐롤라인 힐리는 수년 전 지속 가능한 철강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바이오마이닝(biomining)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2019년 H2ER?(에이치투이알지)를 설립하면서 해당 분야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고, 그러다가 영국 브루넬대학에서 분사한‘피오나’와 협업을 진행할 기회가 생겼다. 피오나는 바이오마이닝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으로, 메인 탄광에서 금속 채굴을 실험 중에 있었다. 캐롤라인 힐리는 피오나와의 협력 덕분에 식물 채굴 금속으로 반지를 만드는 작업에 성공할 수 있었다.
반지에 보석 대신 사용된 이 금속들은 영국 중부의 반즐리 메인 탄광에서 채굴됐다. 이 지역은 영국의 주요 석탄 광산지대였으나 대규모 폭발 및 여러 사건·사고가 일어나 1991년에 폐쇄됐다. 반지에 사용된 금속은 탄광지대의 오염된 땅에서 자란 여우장갑풀, 엉겅퀴 등의 토종식물에서 채취되었다.
<Energy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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